묵상하는말씀/열왕기상묵상 (90) 썸네일형 리스트형 ‘그대로’가 아니라 ‘말씀대로’입니다. 열왕기상 15:1-34 ‘그대로’가 아니라 ‘말씀대로’입니다. 오늘은 여러 왕들이 등장하는데요. 좀 복잡하죠? 앞으로도 수많은 왕들이 등장할 텐데요. 그들의 이름이나 행적들을 다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들 하나하나의 기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오늘 저는 이 구절을 연속해서 3번 읽었습니다. 읽는 동안 몇 가지 인상적인 것이 있었는데요. 먼저 남유다의 왕들을 소개할 때 유독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마아가를 언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녀가 왕권에 영향력 있는 섭정을 한 인물이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그녀가 압살롬의 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무튼 눈에 들어온 대목입니다. 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번갈아 등장하는데요... 겸손은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4:14-31 겸손은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를 뽑았습니다. 잇몸이 붓고 많이 아플 거라고 미리 의사선생님이 경고를 하시더군요. 3일정도 지나면 통증이 가라앉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꼭 챙겨먹으라는 당부와 함께 5일치 약을 쥐어줬습니다. 통증이 사라져도 약은 끝까지 먹으라는 마지막 당부와 함께 말이죠. 하루가 지나자 의사선생님 말대로 잇몸이 붓고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아프더라고요. 약을 열심히 챙겨 먹었습니다. 그래도 밤에는 잠을 자기 힘들만큼 통증이 심했습니다. 처방된 약을 먹고도 진통제를 더 먹어야 할만큼 참기 어려운 아픔이었는데요. 희안하게도 정말 3일쯤 지나니 통증이 사라지더라고요. 제가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지 못합니다. 귀찮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는 게으.. 어떤 일이든지 원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열왕기상 14:1-13 어떤 일이든지 원인과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 있을 때 중의를 공부하는 유학생들과 정기적으로 교제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한의학이라고 하지 않고 중의라고 하는데요. 보통 서양의학을 서의, 중국의학을 중의라고 부르죠. 그때, 중의 공부를 하는 유학생들의 자부심이 대단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중의와 서의의 차이를 물었을 때, 그들의 대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았는데요. 그들의 답에 의하면, 서의는 결과를 다루는 의학이라는 겁니다. 상처가 나면, 상처를 치유하고, 병이 나면 병이 난 부위를 고치는 학문이라는 거죠. 반면, 중의는 상처보다 더 집중하는 곳이 있답니다. 바로 상처의 원인, 병의 시작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학문이래요. 그래서 몸 전체의 유기적인 문제를 다루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열왕기상 13:11-34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정말 난감한 말씀들로 가득찼습니다. 때론 말씀 가운데 우리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구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고 그분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달라서 오해하고 곡해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문투성이의 말씀들입니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자면 두 사람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남유다 출신 하나님의 사람과 베델의 늙은 예언자가 그들입니다. 남유다 출신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여로보암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여로보암의 간청도 뿌리치고 접대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서는 먹지고 마시지도, 그리고 온 길로 되돌아가.. 우리는 늘 말씀 앞에 겸손히 서 있기에 그리스도인입니다. 열왕기상 13:1-10 우리는 늘 말씀 앞에 겸손히 서 있기에 그리스도인입니다. 요나의 이야기를 아시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도망가다 물고기 뱃속에서 다시 살아난 인물의 이야기 말입니다. 아마도 요나하면 모두들 이런 줄거리를 떠올릴 거예요. 그러나 요나서의 주된 줄거리는 요나의 불순종도, 요나의 기적 같은 살아남도 아닙니다. 진짜 줄거리는 악독함의 대명사 ‘니느웨가 용서받았다’는 것입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은 자신의 안위나 귀찮음이 아니죠. 자신이 원수와 같이 여기는 니느웨 사람들이 정말 용서받을까봐, 구원받을까봐 두려워서 불순종한 겁니다. 혼나야할 사람이 용서받는 것이 싫은 거죠.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여러분들이 한평생을 하나님 믿으며 어렵게 살아왔다고 해 보세요. 하나님의 뜻..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것은 내가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열왕기상 12:20-33 우리가 예배해야 하는 것은 내가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입니다. 다윗으로부터 시작되었던 하나의 이스라엘은 솔로몬을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제 분단된 이스라엘을 만나게 되는데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습니다. 분단된 조국을 가진 우리에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살아야 하는 아픔은 익숙합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은 분단체제는 사실 우리 민족에게는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가족끼리 서로 싸우는 가정이 남과도 온전한 사귐을 가질 수 없듯이 우리 민족의 얽히고설킨 감정들은 또 다른 갈등과 대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남북으로 갈려 싸우고, 동서로 갈려 싸우는 처지는 분단이 주는 아픔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굳이 이스라엘이 왜 두 조각으로 나.. 남을 지배하는 것이 섬기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열왕기상 12:1-19 남을 지배하는 것이 섬기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승계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르호보암의 인격과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왕에게 건의를 합니다. 그들은 솔로몬시대에 뼈 빠지게 일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 새로운 왕에게 백성들의 사정과 처지를 살펴달라고 제안하죠. 이 말로 솔로몬이 백성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궁전 뒤에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아픔들이 있었습니다. 일사분란한 정치 뒤에는 백성들을 억누르는 통치가 있었고요.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건축물 중의 하나입니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내었다는 것이 기적일 만큼 위대한 건축물이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방법은 주님과의 관계뿐입니다. 열왕기상 11:14-43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방법은 주님과의 관계뿐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가 저는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데자뷰)을 느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언자 아히야를 통해 여로보암을 새로운 왕으로 세웁니다. 아히야가 자신의 옷을 12조각으로 찟은 것은 아마도 12지파를 뜻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그중 10개 조각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분단을 뜻할 것입니다. 이 아히야의 선포는 이스라엘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솔로몬에게는 더욱 그러했겠죠. 그 충격에 대한 반응으로 솔로몬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아히야 예언자의 선포를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거나, 아니면 여로보암을 죽여 자신의 왕권을 연장시키거나... 이는 마치 .. 이전 1 2 3 4 5 6 ··· 1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