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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열왕기상묵상

열왕기상묵상24]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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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게 해야 합니다.(열왕기상 13: 11-34)


오늘은 정말 난감한 말씀들로 가득찼습니다. 때론 말씀 가운데 우리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구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고 그분의 길과 우리의 길이 달라서 오해하고 곡해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의문 투성이의 말씀들입니다. 간단히 내용을 정리하자면 두 사람의 주인공이 나옵니다. 남유다 출신 하나님의 사람과 베델의 늙은 예언자가 그들입니다. 남유다 출신의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여로보암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고 오는 중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 여로보암의 간청도 뿌리치고 접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에서는 먹지고 마시지도, 그리고 온 길로 되돌아 가지도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델의 늙은 예언자의 말에 속아 이 말씀을 어깁니다. 그리고 그는 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반면 베델의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마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속이고 그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대접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과 같은 예언자라는 말에 그냥 믿어버렸습니다.

사실 가만히 보면 늙은 예언자가 나쁜 사람처럼 보입니다. 속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죽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늙은 예언자는 그러고도 멀쩡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대목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 것일까요? 늙은 예언자는 무슨 유익이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것일까요? 왜 죄에 대한 징계가 우리의 판단과는 다른 것일까요?

남유다 출신 하나님의 사람을 보노라면 웃사(삼하6장)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운반하는 직무를 맡은 웃사는 운반도중 언약궤가 떨어질 뻔한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그는 언약궤를 지키기 위해 언약궤를 손으로 붙들었습니다. 언약궤는 손으로 만지면 안된다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아니 어느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습니까? 언약궤가 떨어지던 말던 가만히 있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겠죠. 그가 오히려 언약궤에 대한 마음이 없는 사람이겠죠. 그런데 웃사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상식이나 감정으로는 용납되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상식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이해되고 안되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우리 이해의 기준으로 하나님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우리의 이해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더 난해한 것은 늙은 예언자입니다. 다시말해 나쁘게 여겨지는 이 양반은 무사하다는 사실이 우리를 난감하게 합니다. 먼저 그가 왜 하나님의 사람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드렸느냐를 생각해 보십시다. 속여서까지 말입니다. 그는 베델의 늙은 예언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미 힘없고 한물간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가 여로보암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죽기전에 담대히 전하고픈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재하는 것에 대해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인 것같이 하나님의 사람을 속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재하기를 열망하는 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십니까? 늙어서 이제 포기할 만도 한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임하는 것을 소망하는 말씀에 대한 갈망말입니다.

이 말씀을 속은 자와 속인 자, 혹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비로 보시면 말씀에 대한 오해가 생깁니다. 두 사람을 따로 떼어 묵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상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같은 부류의 예언자라면 괜찮겠지'라는 상식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식선에서 이해하려고 듭니다. 어떤 때는 상식으로 재단을 하고 각색을 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지켜져야 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상식이 되어야 합니다. 반면 늙은 예언자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상식을 뛰어넘는 것을 보여 줍니다. 많은 이들은 늙었다, 이젠 끝났다, 한물갔다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태가 끊긴 사라에게도 하나님은 이삭을 주시고 도저히 상식에 맞지 않는 부활도 주님은 이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식으로 이해하거나 각색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나의 상식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지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상식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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