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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사기묵상

[사사기묵상08] 행하는 자가 '전문가'다(삿3:7~14)

1. 축구를 좋아하십니까?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열렸을 때 열광적인 모습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4강에 들며 더욱 열광했었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개최되었던 2002년을 제외하면 한국대표팀은 늘 대회때마다 우리들을 머리쓰게 만들었습니다. 즉, 경우의 수를 계산하게 만든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경우의 수란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되지 못하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가장 가슴조리게 하는 것은 다른 팀이 져야 올라가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다른 팀에 의해 우리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경우의 수는 주체적인 존재가 없는 것입니다.

2. 어두움은 사실 주체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빛과 어둠이 같이 공존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다고 빛도 존재하고 어둠도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둠은 경우의 수일 뿐입니다. 빛이 없으면 존재하는 그런 경우의 수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둠을 겁낼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다만 빛을 소유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둠에 갇히는 이유는 어둠의 힘이 커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3. 언제나 악함으로 인해 우리가 점령당하는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7절)" 언제나 내 안에 참된 것이 없으면 거짓이 진실처럼 보입니다. 호랑이 없는 굴에 토끼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이단의 문제가 심각한데 사실 이단이 강력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 말씀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이단은 믿는 자들을 노리지요. 진짜가 없으면 가짜가 진짜처럼 보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잃으면 이 세상의 신이 진짜처럼 보입니다. 이 땅의 경제, 철학, 윤리가 진짜처럼 보입니다. 보자가 되는 것이 은혜받은 것이고, 복받은 것이라는 사실이 진실처럼 보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없으면 말입니다.

4.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잊었습니다. 잊은 그 자리는 비어있는 법이 없습니다. 빛이 없으면 원하지 않아도 그 자리는 어둠의 자리가 되듯이 말입니다. 여호와의 자리를 바알과 아세라가 차지합니다. 바알은 가나안지역에 뿌리 내리고 있는 전통적 남성 신상입니다. 토지의 생산력과 가축의 번식력을 주관하는 신으로 여기며 농경사회의 주요 신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가나안에서 바알의 영향은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민족이 농경민으로 변화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땅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아세라는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여신입니다. 주로 나무의 풍성한 열매를 상징하여 나무로 만든 목상을 세워서 성경에는 아세라 목상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5. 이와같이 이 땅의 문화는 모든 것이 풍요와 번영입니다. 풍요와 번영은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풍요와 번영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풍요와 번영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쫓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보아야지 손가락을 보면 안 되듯이 우리의 갈 자리는 하나님의 나라이지 그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풍요와 번영을 쫓다가 우리는 '함께'를 잃어버립니다. 풍요와 번영을 쫓다가 '공의'를 잃어버립니다. 그 결과는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악한 길로 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는 방법 중 하나는 고난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가는 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심의 기초입니다. 물론 고난은 아프고 쓰립니다. 아프지 않고는 돌이키지 않는 우리의 죄성 때문에 고난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사랑에 기초한 것이기에 결코 오래가지 않습니다. 분명히 끝이 있습니다. 메소보다미아에 의한 고난은 8년만에 종결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 웃니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웃니엘은 갈렙의 조카이자 사위였습니다. 그는 이미 삿1:12~13에서 그의 용맹성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메소보다미아에 의한 고난이 8년간 지속되는 동안 웃니엘은 나서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고난의 기간 8년이 필요했다고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난의 기간은 하나님께서 계산하고 알고 계십니다. 가장 적절한 때를 알고 계시고, 가장 유용한 때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사람을 통해 마무리를 지으십니다. 웃니엘이 그 사람입니다. 준비된 사람, 응답하는 사람이 하나님 사역의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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