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157 - 주님 앞에 겸손한 자가 주님을 만납니다.

2024. 11. 12.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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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서7:44~47   그런 다음에, 그 여자에게로 돌아서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여자를 보고 있는 거지?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좋은 아침입니다. 기온차가 심한 요즘이죠. 건강관리에 주의하시고 월동을 준비하듯 우리의 몸과 마음도 변화에 대한 준비를 잘하시길 빕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믿음과 기대로 오늘을 창조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어제는 간단한 퀴즈로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서막을 여셨죠. 그 내용은, '감사가 깊을수록 사랑도, 믿음도 깊다.'는 것이죠. 그리고는 이제 예수께서는 여인과 시몬을 직접적으로 비교합니다. 그 비교는 3가지입니다.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다."

 

유대 사람들의 관습에는 초대된 이에게 발 씻을 물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모래바람이 심한 중동지역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죠. 주로 그 일은 그 집안의 종들이 담당했습니다. 이것은 초대받은 이에 대한 존중이죠.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적이 있죠. 이때 베드로는 놀라서 안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이는 종이 주인에게 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죠. 그때 주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과 말씀하시죠.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보시는 마음입니다. 선생이자 스승 되시며 구세주가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을 초대하고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제 좀 드러나죠? 그가 예수님을 초대한 목적이 결코 존중해서는 아니라는 사실이 말이죠.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여기서도 관습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환영의 의미로 입을 맞추는 것이 관행이었죠. 마치 우리로는 악수를 하거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 정도입니다. 조금 더 나가면 허깅을 하는 거죠. 반가움의 표시이고 환영의 의미죠. 초대교회에는 신기한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주인과 종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었죠. 집에서는 주인과 종이었으나 교회 공동체에서는 서로 교인과 교인으로 만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과 종이 서로 입을 맞추는 일이 벌어졌죠. 이런 모습에 일반 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도 그런 비슷한 예가 있죠. 1900년대 초 한국사회는 양반과 머슴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전북 금산에 교회가 세워졌는데요. 그곳에 조덕삼과 이자익이라는 사람이 교인으로 있었죠. 그런데 이 둘은 주인과 머슴 관계였습니다. 조덕삼은 부자로 자신의 사랑채를 교회로 내준 사람이고, 이자익은 그의 머슴이었죠. 한 번은 장로를 선출하는데 공교롭게도 조덕삼과 이자익이 추천되어 한 사람을 뽑게 되었습니다. 누가 장로가 된 줄 아세요? 당시 머슴이던 이자익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인 조덕삼은 이를 받아들이고 이자익을 장로로 극진히 섬겼다고 하죠. 결국 훗날, 이자익은 목사가 되고 조덕삼은 장로로 교회를 함께 섬겼다는 이야기는 한국 기독교 역사 가운데 아름다운 일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몬은 그러지 않았던 거죠. 초대했으나 환영의 마음은 없었던 것입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유대인들에게는 손님을 맞이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이는 나그네를 환대하라는 율법에 의한 것이죠. 앞서 언급한 두 가지도 이에 속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이죠. 유대에서는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죠.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기름 부음은 이와는 다른 의미의 기름 부음이죠. 일단 쓰이는 언어가 다릅니다. 왕을 세우는 기름 부음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는 [마시아]- 우리는 메시아로 발음하죠.-이고, 나그네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다센]입니다. [다센]은 '살이 찌다.' '번성하다.'는 의미를 가졌죠. 그러니까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그를 축복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그 축복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예수님을 존중하거나 환영하지도, 또한 축복할 마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니 확 비교가 되죠? 숨겨진 마음은 다 표시가 납니다. 중심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초대라는 포장을 한다고 해도 속일 수가 없어요. 이 부분에서 저는 우리의 신앙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죠. 교회도 다닙니다. 가끔 기도도 해요. 밥 먹을 때도 기도하죠. 사실 그것이 기도인지 습관인지 모를 때 많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간혹 '주여'를 부르짖고 때론 성경말씀을 인용하기도 하죠. 

 

그러나 그 말씀을 따를 마음은 없습니다. 기도한 대로 마음 먹지도, 움직이지도 않죠. 심지어 내 삶에 기적이 일어나도 그 기억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주님을 존중하지도, 존경하지도, 또 가장 귀한 가치로 높이지도 않기 때문이에요. 마치 대화는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찬 것처럼 말이죠. 어쩌면 기만적인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시몬과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주님 앞에 종이 되어 그 발을 씻는 겸손이 우리의 마음을 주님과 합하게 합니다. 마음을 열어 주님께 입 맞추고 받아들이는 겸손이 우리의 눈을 열어 빛 가운데 영안을 갖게 하죠. 나의 것을 다 드리고 오직 복의 근원이 주님이심을 인정하는 겸손이 우리에게 복의 길을 열어 줍니다. 주님 앞에 겸손한 자가 주님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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