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 7:47~48 그러므로 내가 네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것은 그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용서받는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평강의 한 주를 보내시리라 믿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감사주일을 준비하며 지난 한 해 동안 주신 복을 세어보며 기뻐하는 한 주 되시길 빕니다.
이번 주일은 우리 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공교롭게도 본문이 감사와 연결되어 있네요. 그래서 한번 더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리의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묵상합니다.
이미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내신 퀴즈에서 감사가 많은 사람이 더 깊은 사랑을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신 바 있죠. 이번에는 시몬의 집에 들어와 주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을 빗대며 말씀하십니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정확히 이 여인의 죄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시몬도 알만한 알려진 죄인이라는 거죠. 물론 여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편견과 오해도 있을 수 있죠. 그렇다 치더라도 그녀가 죄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주님은 용서를 선포하시죠.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용서는 우리의 공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앞서 주님께서 퀴즈를 통해 알려주셨다시피 탕감은 빚진 자의 수고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채권자의 마음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간구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과 같죠. 주님의 은혜는 그분의 긍휼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주님의 값없이 주시는 사랑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방식이 그렇습니다. 주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의 문이 열린 것뿐이고요. 문제는 그 구원의 문을 통과하는 것은 우리라는 사실이죠. 이를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통해서 과거형의 구원과 현재형의 구원, 그리고 미래형의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미 구원의 문은 열렸으나 그 문으로 들어가 그 구원을 완성하는 과정에 우리의 할 일이 있다는 거죠.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10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주님 앞에 나오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주께 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들을 제사장에게 보내죠. 당시 한센병자들은 사회적 격리 조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고침을 받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확인을 받고 격리를 해제할 수 있었죠. 그들의 발걸음은 그런 의미의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가는 동안 놀랍게도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이 예수께 와서 영광을 돌리죠. 고침을 받은 것에 감격하여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에게 뭐라고 하신 줄 아십니까?
누가복음서 17:19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이미 그들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자는 돌아와 감사의 찬양을 하였던 한 사람, 사마리아인 뿐이었습니다. 병 고침을 받은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이는 마치 용납받는 것과 용서받는 것이 다른 것과 같죠. 주님께서 아무 편견 없이 바리새파 사람이든, 죄인이든 만나시고 그들의 마음을 받아주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용서받는 데는 조건이 있기 때문이죠.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내신 퀴즈에서 우리가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빚진 것을 탕감받았다는 것에는 숨겨진 조건이 있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우리는 또 다른 탕감의 기록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서 18장에 나오는 빚진 자의 비유입니다. 너무도 유명한 구절이죠. 만 달란트 빚진 자를 불쌍히 여긴 채권자는 그 빚을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만 달란트가 얼마나 큰돈인지 굳이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냥 있을 수 없는 탕감이라고 해 두죠. 그런데 그 탕감받은 자는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체벌하죠. 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이 어느 정도 차이인지도 굳이 따질 필요 없습니다.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차이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탕감받은 자가 자신의 채무자를 잡들이 했던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탕감을 받았는지 몰랐기 때문이죠. 죽을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었다면 그는 세상을 새롭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마음이 없었어요. 왜요? 그에게는 감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탕감이 철회되는 비극으로 끝이 납니다.
은혜를 은혜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감사입니다. 감사를 잃으면 이루었던 것도 다 잃습니다. 감사를 모르면 은혜의 통로가 막히죠. 아니 주셨던 은혜조차 다 메말라 버리고 말죠. 올해 여러분이 무엇을 이루고 무엇을 얻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아는 것이 있어요. 그 이룸과 얻음에 대한 감사를 모른다면 여러분은 이루고도 다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얻고도 빼앗길 것이라는 거죠.
사도 바울은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처럼 죄 많은 곳에 용서도 많기 때문이죠. 다시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요. 주님의 용서를 용서답게 만드는 우리의 제사가 그것입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그 감사가 은혜를 은혜답게, 용서를 용서답게, 그리고 구원을 구원받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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