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7~8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이제 제법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죠. 9월은 9월인가 봅니다. 끝 모를 무더위가 계속될 것 같던 여름도 이렇게 물러가겠죠? 시간의 질서는 어김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자꾸 잊어버릴 뿐이죠.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오르락내리락 알 수 없는 파고를 겪죠. 그런데 그 속에서 우리가 잊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운 시간은 계속될 것 같고 고통은 끝이 없을 것 같은 착각이죠. 하나님의 계절이 있습니다. 고통의 시간이 있다가도 회복을 주시는 시간은 반드시 옵니다. 어제 힘드셨나요? 그러면 오늘은 회복 주실 줄 믿습니다. 어제의 고통이 오늘도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으로 이 시간을 시작하지 마세요. 우리 안에 믿음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그 회복의 기대를 믿고 맑고 밝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유명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제자가 되는 핵심적인 구절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저는 이 부분이 생뚱맞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요. 이전에 이 본문을 읽을 때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단순한 만남으로 바라보았죠. 그래서 이 부분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엇이 베드로를 이토록 절박하게 회개하도록 만들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새로운 해석으로 이 부분을 바라보면 이해가 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첫 번째가 아니라는 해석으로 이 장면을 본다면 말이죠.
더 나아가 우리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 위에서 하셨던 설교 말씀을 떠올릴 필요가 있죠. 그때 선포하신 말씀이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어요. 여기서 회개는 단순한 죄의 고백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이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뜻하신 대로 세상이 바뀌기를 꿈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정한 선이 선이 아니고요. 주님이 곧 선이라는 것이죠. 그것을 깨닫고 믿는 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베드로가 꿈꿨던 메시아, 베드로가 바랬던 어떤 선으로 예수님을 바라봤던 자신의 미숙함을 고백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고백이 되는 셈입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에 고전 책에 빠져 지냈던 적이 있습니다. 중학생이 뭘 안다고 그렇게 고전이나 철학책을 읽었는지 지금도 이상하지만 아마도 그때는 그게 멋져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폼생폼사라도 그것이 책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그렇게 허세에 빠져 책을 읽었으니 얼마나 아는 척을 했겠습니까? 이래저래 제가 읽고 깨달은 점들을 친구들에게 설파하며 다녔죠. 그러다 어느 날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과 책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저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시는 겁니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선생님의 해석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야기였어요. 놀랐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놀람이 존경심으로 변했다는 거죠. 내 생각보다 넓고 깊은 선생님의 생각에 빠져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를, 제가 기억하는 제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 중에 하나로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눈이 밝아지고 생각이 깨어나는 신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죠.
저는 이후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때의 경험이 바로 '회개'였구나 싶었습니다. 우리는 회개가 무슨 어떤 잘못된 행동을 뉘우치는 것쯤으로 생각하지만 그런 자잘한 죄에 대해 주님은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죄는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잘못된 근본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그 근본을 온전하게 바꿔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죠. 바로 주님이 나의 주인공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하죠. 그런데 이 말을 사람들은,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다'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따로 있는 줄 알죠.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 우리가 말하는 사랑, 우리가 원하는 사랑이 하나님께 많은 줄 압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사랑하고 싶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어 있고,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시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사랑이 흐른다는 뜻이죠.
성경의 인물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여겨지는 다윗은 그 행실이 존경받을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그 삶의 결과가 다 옳은 것은 아니었죠.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불리는 이유는 그의 고백 때문입니다. 그 고백은 시편 27편에 나옵니다.
시편 27:4 주님, 나에게 단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나는 오직 그 하나만 구하겠습니다. 그것은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면서 주님의 자비로우신 모습을 보는 것과, 성전에서 주님과 의논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의 평생의 소원은 매일 주님을 아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를 가장 인간답게 하고 빛나게 하는 지혜이기 때문이고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평생소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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