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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02 - 주님께서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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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5:12~13   예수께서 어떤 동네에 계실 때에, 온몸에 나병이 든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예수를 보고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청하였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에게 대시고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좋은 아침입니다. 주일을 지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이 감사로 벅차오르길 기도합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이제 나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내 안의 기쁨을 전파할 시간이 왔고, 또 우리에게 차고 넘칠 감사가 채워질 기대로 가득 차, 행복하게 시작하는 월요일 되시길 빕니다.

 

예수께서 동네에 계실 때 나병환자가 찾아옵니다. 이미 어제 주일공동체예배에서 이 부분을 나눴지만 누가의 필체는 매우 논리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죠. '동네'에 계셨다고 콕 집어서 말하는 이유는 그다음 나오는 나병환자가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누가의 주제는 '동네'를 중심으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나병이 고쳐졌다는 의미보다 '동네'와 관련된 의미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죠. 그 '동네'와 관련되었다는 것이 바로 '소외감'입니다. 누가는 소외된 자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죠.

 

그런 글 패턴은 다른 곳에서도 존재합니다. 나병환자는 철저히 격리되는데요. 그래서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을 '언터쳐블(The Untouchable)'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였던 거죠. 그렇게 우리 사회는 계급이 만들어지고 계층이 존재합니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처럼 냄새 하나로 함께 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선이 그어지는 단절이 생기는 거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서 만지시는(touch) 장면이 나오죠. 굳이 만지시기까지 하실 필요가 없는데요. 그 장면이 등장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무도 만지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이 만지시죠. 다시 말해 사람들이 규정지은 굴레, 계급과 차별을 하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타파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지실 때 놀랐을 겁니다. 피부병이 감염될 것을 우려했겠죠. 간혹 우리들은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계급과 차별을 마치 절대적인 규범처럼 지키며 그 규범을 어기는 것에 두려워하며 놀라는 경우들이 있죠. 이것은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또 저것은 어쩔 수 없다고도 하죠. 그렇게 스스로를 가두며 점점 좁아지는 세상에서 삽니다.

 

주님께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어제 공동체 찬양에서 이런 가사가 있더라고요. 

 

주님이 풀지 못할 힘든 일 없네
주님이 못 움직일 높은 산 없네
주님이 잠잠케 못할 험한 폭풍 없네
주님이 위로 못할 슬픔은 없네   

- 주가 돌보시네 가사 중에서 -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못하실 일은 없습니다. 못 고치실 일도 없고, 못 넘을 것도 없죠. 특별히 못 만지실 사람도 없으시죠. 내가 아무리 못나도 주님께 나오면 만지시고 고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더럽고 추해도 주님께 나오면 안아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세워주십니다. 아무리 실패하고 실수하여 넘어져도 주님이 만지시면 과거는 영광이 되고 실수는 간증이 되죠. 그러니 주님께 나오세요. 나를 만지시고 나를 고치시도록 오늘도 주님 앞에 엎드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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