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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200 - 내게 있는 작은 희망을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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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 17:5~14   그러나 압살롬은, 아렉 사람 후새도 불러다가, 그가 하는 말도 들어 보자고 하였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오니, 압살롬은 그에게, 아히도벨이 한 말을 일러주고서, 그 말대로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묻고, 또 다른 의견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다. 후새는 압살롬에게 아히도벨이 베푼 모략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그 까닭을 설명하였다. "임금님의 부친과 그 신하들은, 임금님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용사들인데다가, 지금은 새끼를 빼앗긴 들녘의 곰처럼 무섭게 화가 나 있습니다. 더구나 임금님의 부친은 노련한 군인이어서, 밤에는 백성들과 함께 잠도 자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그가 지금쯤은 벌써 어떤 굴 속이나 다른 어떤 곳에 숨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군인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처음부터 그에게 죽기라도 하면, 압살롬을 따르는 군인들이 지고 말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것입니다. 그러면 사자처럼 담력이 센 용사도 당장 낙담할 것입니다. 임금님의 부친도 용사요, 그의 부하들도 용감한 군인이라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임금님에게로 불러 모아서,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군인을, 임금님께서 친히 거느리고 싸움터로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지 들이닥쳐서, 마치 온 땅에 내리는 이슬처럼 그를 덮쳐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물론이려니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가 어떤 성읍으로 물러 나면, 온 이스라엘이 굵은 밧줄을 가져다가, 그 성읍을 동여매어, 계곡 아래로 끌어내려서, 성이 서 있던 언덕에 돌멩이 하나도 찾아볼 수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이, 아렉 사람 후새의 모략이 아히도벨의 모략보다 더 좋다고 찬성하였다. 주님께서 이미 압살롬이 재앙을 당하게 하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모략을 좌절시키셨기 때문이다.


아히도벨의 계략에 갑자기 제동이 걸렸습니다. 후새의 등장 때문입니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을 듣고 흡족해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략을 즉시 실행하지 않고 후새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한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더 완벽한 계획을 바라서였을까요? 아니면 경쟁을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요? 힘이 쏠리는 단독적인 후계자를 두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독재자의 모습이죠. 제 개인적으로는 압살롬이 너무 큰 자신감을 가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인재를 쓰는 선택의 폭이 컸겠죠. 아마도 자신에게는 많은 책사들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어쩝니까? 후새는 다윗이 심어놓은 사람이었죠. 다윗에게는 압살롬을 막을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압살롬 입장에서는 스파이인 셈입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조금 더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전부다 제거하자는 의견을 내죠. 이 의견은 압살롬의 허영심을 자극한 것 같아요. 후새는 압살롬에게 시간은 당신 편이라고 말하죠. 그리고 압살롬의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지, 또 그들이 다윗을 압도할지를 상세히 말합니다. 그 말에 고취되었을까요? 압살롬은 후새의 의견에 찬성을 합니다. 

 

참 하나님의 방법은 다양하죠? 후새가 뛰어난 전략가이기는 하지만 압살롬에게 투항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죠. 누가 봐도 그는 다윗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아히도벨이나 기타 다른 사람들도 다윗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그는 끝까지 다윗을 따르려고 했던 인물이죠. 그런데 그런 후새를 압살롬은 쉽게 믿었습니다. 이는 압살롬이 자만심에 빠져 그런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 작은 실마리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되죠. 절망 속에서 우울감에 빠져 될 대로 되라고 도망치던 다윗이 정신을 차리고 유일하게 던진 희망이 후새였습니다. 다윗이 생각해낸 전략이지만 그도 이것이 통하리라고는 믿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작은 희망을 통해 일하시죠. 하나님의 일하심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작아도 희망을 통해 일하십니다. 내가 던진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고, 내가 품은 소망을 통해 미래를 계획하시죠.

 

우리는 쉽게 '그것이 될까?' 하며 포기합니다. 너무 작아서, 너무 허황되어서, 너무 상황이 기울어서 희망을 버립니다. 이미 자신이 내린 결론으로 치닫죠. 이미 나는 졌고, 이미 상황은 끝났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버리고 희망은 꺼집니다.   

 

기억하시나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 앞에 가로막힌 모세를 말이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앞은 홍해가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면초가라고 하죠. 앞뒤로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사람들의 한탄 소리가 들끓었어요. 이제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모세는 홍해 앞에서 지팡이를 듭니다. 그 지팡이가 무엇입니까? 의심 많고 소심했던 모세에게 보여주셨던 이적의 지팡이었습니다. 핑계 많고 부정적이던 모세에게 주신 희망의 지팡이죠. 그는 그 마지막 희망의 지팡이를 들어 이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이 그렇습니다. 도저히 보이지 않고, 도무지 방법이 없는 그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은 내게 남은 마지막 그 작은 희망을 통해서입니다. 사르밧 여인의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한 방울이 역사를 만듭니다. 죽음과 저주의 십자가, 그 속의 보혈 한 방울이 하나님 구원의 역사를 만들죠.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내 안에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희망을 가진 자에게는 여전히 기회가 있습니다. 그 희망이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도구이기 때문이죠. 그 작은 희망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되길 빕니다. 우리가 품은 가능성의 기대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하루이길 빕니다. 그 희망 속에 사는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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