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7:15~22 후새는 곧 사독 제사장과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어떤 모략을 베풀었는지, 그리고 자기가 또 어떤 모략을 베풀었는지를 알리고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빨리 다윗 왕께 사람을 보내서, 오늘 밤을 광야의 나루터에서 묵지 마시고, 빨리 강을 건너가시라고 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임금님만이 아니라, 임금님과 함께 있는 백성까지 모두 전멸을 당할 것입니다." 한편,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과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는, 예루살렘 바깥의 엔 로겔 샘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으려고 성 안으로 드나드는 것을 삼갔다. 거기에 있다가, 여종이 그들에게 가서 소식을 전하여 주면, 그들이 그 소식을 받아서 직접 다윗 왕에게 전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만 한 젊은이가 그들을 보고서, 압살롬에게 가서 일러바쳤다. 탄로가 난 줄을 알고서, 그 두 사람은 재빨리 그곳을 떠나 바후림 마을로 가서,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 집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 속으로 내려갔다. 그 집 여인은, 덮을 것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에 펴 놓고, 그 위에 찧은 보리를 널어놓아서,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였다. 압살롬의 종들이 그 집으로 들어와서 그 여인에게 물었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이 어디에 있느냐?" 그 여인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은 방금 저 강을 건너갔습니다." 그들이 뒤쫓아 갔으나, 찾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간 뒤에, 그 두 사람이 우물 속에서 올라와, 다윗 왕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하였다. 그들은 다윗에게, 아히도벨이 다윗 일행을 해치려고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를 알리고, 어서 일어나서 강을 건너가라고 재촉하였다. 그러자 다윗이 자기와 함께 있는 온 백성을 거느리고 거기에서 떠나, 요단 강을 건너갔는데, 날이 샐 때까지 요단 강을 건너지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 본문은 마치 드라마틱한 사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위험에 빠진 다윗에게 피할 시간을 벌어준 후새는 다급하게 다윗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보내죠. 그 임무를 맡은 이들은 요나단과 아히마아스였습니다. 성 안에 있던 여종이 전갈을 이들에게 알리고,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요나단과 아히마아스가 이를 받아 다윗에게 갑니다. 그런데 이들을 수상하게 본 압살롬의 군사들이 이들을 뒤쫓죠. 쫓기던 이들은 급하게 아무 집에나 몸을 숨깁니다. 그 집에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이들을 우물 속에 그들을 숨겨주고 군사들의 눈을 피합니다. 드라마라면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재미있다고 할까요? 아니 긴장감 있는 전개라고 할까요? 흥미진진하게 본문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죠. 분명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하도록 만들어 주는 이야기 전개입니다만 그런 재미를 위해 이 장면이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성경이 그리 재미있는 책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전개라고 말하기도 그래요.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기록하지는 않습니다. 결국에는 취사선택인데요. 기록자의 입장에서 중요도와 전달 의도를 가진 기록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이야기 또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며 여리고 성 앞에서 벌어진 두 정탐꾼의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서 2장에 나오는 이야기죠. 정탐을 하던 두 사람은 발각이 되었는데 이때 라합이라는 여인이 나타나 그 둘을 숨겨줍니다. 오늘 본문과 많이 비슷하죠. 저는 이 라합 여인의 기록이 무척 특이하다고 여겼습니다. 그 여인은 정탐꾼들을 도와야 하는 처지도 아니었고요. 그렇게 자신의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었죠. 그런데 그녀는 정탐꾼을 도왔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천한 신분이었던 것 같아요. 성경의 기록 또한 그게 다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기록되죠. 성경에서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또 그 이름은 다윗과 예수님의 족보에도 등장하는 엄청난 이름이 되죠. 이런 점이 오늘 본문이 기록된 이유와 연관이 되어서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통해 다윗은 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런 도움을 받는 다윗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들을 다윗이 다 알고 있을까요? 자신을 위해 이름 없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신을 위해 수많은 무명의 인물들이 헌신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위해'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이 있음을 다윗을 알고 있을까요? 마치 가나안 정복이 위대한 군사력이 아니라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이들, 작은 도움들, 곳곳의 보이지 않는 칠천 명들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요?
은혜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믿고, 또 기대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됩니다. 지금은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은혜가 없는 것이 아니죠. 그분의 은혜는 내 생각 너머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여종이나 여인을 통해, 목숨을 건 인생들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도우십니다.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도 나는 모를 거예요. 저 너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나를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또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이 어떻게 나를 돕고, 나를 위해 일하는지 나는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도 많아지고, 되는 일이 없다고 포기하기도 하겠죠. 그런데 이것 하나쯤은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하나님은 일하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나를 위해 준비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을요.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죠.
'묵상하는말씀 > 사무엘서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엘서묵상일기206 - 주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0) | 2021.11.11 |
---|---|
사무엘서묵상일기205 - 나의 작은 믿음은 주위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됩니다. (0) | 2021.11.09 |
사무엘서묵상일기204 - 우리에게는 모두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0) | 2021.11.08 |
사무엘서묵상일기203 - 내가 행한 선한 일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0) | 2021.11.05 |
사무엘서묵상일기202 - 어제보다 오늘이 낫습니다. (0) | 2021.11.04 |
사무엘서묵상일기200 - 내게 있는 작은 희망을 통해 주님은 일하십니다. (0) | 2021.11.02 |
사무엘서묵상일기199 - 악한 일에는 미련하세요. (0) | 2021.11.01 |
사무엘서묵상일기198 - 우리의 생각은 자랍니다. (0) | 2021.10.29 |
사무엘서묵상일기197 - 어떤 상황이 와도 나의 생각은 상황이 아니라 내가 주인입니다. (0) | 2021.10.28 |
사무엘서묵상일기196 - 불만과 불평에 나를 맡기지 마세요. (0) | 2021.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