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7:24~29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야, 압살롬이 비로소 이스라엘의 온 군대를 직접 거느리고 요단 강을 건넜다. 압살롬은 요압 대신에 아마사를 군지휘관으로 세웠는데, 아마사는 이드라라는 이스마엘 사람의 아들이다. 이드라는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결혼하여 아마사를 낳았는데, 아비갈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여동생이다. 이렇게 온 이스라엘과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을 쳤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다다르니, 암몬 족속의 도성 랍바에서 나하스의 아들 소비가 찾아오고, 로데발에서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찾아오고, 로글림에서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찾아왔다. 그들이 침대와 이부자리와 대야와 질그릇도 가지고 오고,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씨도 가지고 왔다. 그들은, 그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굶주리고 지치고 목말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서, 꿀과 버터와 양고기와 치즈도 가져다가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었다.
후새의 말에 따라 압살롬은 단번에 다윗을 치기 위해 많은 군대를 모집합니다. 그로 인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을 거예요. 이 틈을 타 다윗은 마하나임까지 도망가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32장에 의하면, 마하나임은 야곱이 천사를 만났던 곳으로 알려진 곳이죠. 다윗도 이곳에서 천군만마와 같은 세 사람을 만납니다. 바로 소비와 마길, 그리고 바르실래입니다. 그들은 각기 많은 먹을 것과 필수품들을 챙겨 가져오죠. 마치 군량미와 같은 귀중한 것들입니다. 문득 동방으로부터 온 세 명의 박사들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이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요? 설명에 따르면 그들은 같은 곳에서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기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관계가 없는 이들이 한 마음으로 다윗을 찾아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인연일까요?
소비라는 인물은 처음 들어보시죠? 성경에서는 오늘 본문에만 등장하는데요. 그의 이름은 처음이어도 그의 아버지 나하스는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죠. 사울 왕 시절 이스라엘에 대적해 서로 치열하게 싸웠던 암몬의 왕이 바로 나하스입니다. 반면, 나하스와 다윗과의 관계는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사무엘하 10장에 보면 다윗의 고백으로 나하스가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것을 알 수 있죠. 이는 나하스가 죽었을 때에도 다윗이 조문단을 보낼 정도의 관계로 발전하죠. 물론 나하스를 대신해 왕이 된 하눈이 그 선천적 팔랑귀 버릇으로 다윗을 오해하는 바람에 관계가 악화되기는 했지만 나하스와 다윗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소비는 형인 하눈과 달리 다윗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버지 나하스가 인정했던 다윗,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잊지 않았던 다윗의 면모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마길의 이름은 그리 멀지 않은 최근에 들어보셨을 거예요. 바로 므비보셋을 보호하고 키우던 사람이었죠. 다윗이 므비보셋을 데려다 왕궁에서 지내도록 조치하기 전까지 므비보셋을 모시던 사울 왕의 신하 출신입니다. 바르실래는 어떨까요? 그가 왜 다윗에게 찾아왔는지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늘 본문 이후 바르실래가 몇 차례 더 등장하는데요. 그는 매우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게다가 부자였다고 하죠. 그런 그가 왜 다윗에게 찾아왔을까요? 심지어 지금 압살롬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것은 아마도 다윗에 대한 공경심이 한 몫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울이 죽었을 때 길르앗 사람들은 그의 장례를 주관해 주었습니다. 어찌 보면 대립각에 서 있던 다윗에게는 길르앗이 사울의 편으로 보이는 행동이죠. 그러나 다윗은 그들을 칭찬하고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보통의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품이 넓은 행동이죠. 어쩌면 이런 모습을 바르실래는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만약 이에 대한 공경심과 인정이 있었다면 다윗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그를 위해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마하나임까지 찾아온 그 세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찾아왔는데,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어요. 다만 마음 한편에 울리는 메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베푼 선한 일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라는 생각이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 하나님의 선하심을 따라 사는 일,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사랑, 작은 나눔, 본인조차도 잊을 너무나 하찮은 일이라도, 나를 통해 이루어진 사랑은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 오늘 이 아침 주시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무언가 선한 일을 할 때, 그것이 바로 인정받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때론 오해를 받고 괜한 짓 했다는 느낌도 받죠.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은 손해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나를 위해 살아가도 모자랄 요즘 같은 시기에 바보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때론 그런 선한 마음이 이용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매일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제 안에 살며시 스며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네가 행한 작은 선함은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고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잊고, 기억조차 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고요. 밀알은 썩어 없어질지언정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열매로 돌아온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저지를 죄는 빨리 잊으시고 우리가 행한 선은 손바닥에 새겨 기억하시는 분이시죠. 그 열매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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