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8:6~9 다윗의 군대가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려고 들녘으로 나아가서, 에브라임 숲 속에서 싸움을 하였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였는데, 그들은 그날 거기에서 크게 패하여서, 이만 명이나 죽었다. 싸움이 온 땅 사방으로 번져 나가자, 그날 숲 속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이 칼에 찔려서 죽은 군인보다 더 많았다. 압살롬이 어쩌다가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의 울창한 가지 밑으로 달려갈 때에, 그의 머리채가 상수리나무에 휘감기는 바람에, 그는 공중에 매달리고, 그가 타고 가던 노새는 빠져나갔다.
전쟁의 승패를 오늘 본문은 간단하게 적고 있습니다. 다윗의 군대가 대승을 거두죠. 이미 다윗의 믿음대로 예견된 결과였을까요? 그러나 다윗의 믿음은 무작정 믿음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압살롬의 군인들이 칼보다 숲에서 목숨을 더 많이 잃었다는 대목이 나오죠. 이 대목이 의아합니다. 그 숲이 어떤 숲이었기에 그랬을까요? 아마도 에브라임 숲은 좁은 협곡과 가파른 벼랑, 그리고 난데없는 늪이 즐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형이 험악하니 익숙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다고 그런 지형이 수만의 사람들을 죽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가 그 지형지물을 잘 이용한 것이죠. 다시 말하면 다윗의 군대는 철저한 계획과 지략으로 이 전쟁에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압살롬의 군대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자신들의 숫자를 과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무작정 그 숲으로 돌격했겠죠. 머릿수를 자랑했고 이미 넘어온 대세를 믿었겠죠.
그런 정황은 압살롬의 최후를 통해 우리에게 한번 더 각인시켜 줍니다. 이미 승부가 기운 전쟁에 압살롬은 도망을 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곳곳에 배치된 다윗의 군대와 마주칩니다. 이에 황급히 도망치다가 그만 그의 머리가 상수리 나뭇가지에 걸리고 맙니다. 기억하시죠? 압살롬의 머리카락은 숱이 많고 빨리 자라기로 유명했죠. 그것은 늘 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왕관과도 같은 권력의 상징이었고, 내면적으로는 똑똑함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을 거예요. 게다가 그가 전쟁에 임하며 투구를 쓰지 않은 것이 이상합니다. 머리카락이 너무 풍성해서 맞는 투구가 없었을까요? 아니면 너무 빨리 자라서 투구가 벗겨졌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너무 싱거운 승부가 되리라 생각한 나머지 투구조차 필요 없다고 느꼈을까요?
여기에 다른 두 믿음이 등장합니다. 하나의 믿음은 주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고 승리를 바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는 믿음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하지만 그 은혜는 바로 자신의 손과 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믿음이죠. 그래서 철저한 계획과 지형지물을 미리 간파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반면 똑같이 승리를 확신한 믿음이 있어요.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죠. 자신의 군대 숫자가 많음을 보고 승리를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오는 승리를 바라는 믿음을 갖죠. 이것이 다윗과 압살롬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결과를 내죠.
주님이 하실 일이 있고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는 주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간구할 수는 있어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간구하는 일이죠. 우리가 은혜를 바라고 간구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은혜를 만들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은혜는 주님의 재량에 따라 임합니다. 한마디로 그분의 마음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바꿀 수도 없어요. 단지 우리가 간구하고 원하고 바라는 이유는, 그래야 그분이 주신 은혜를 깨닫고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이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죠. 은혜를 누리고도 우리는 은혜인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베푸신 은혜조차 그렇게 받고서도 알지 못하는 우리 아닙니까? 효도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부모님을 생각하고 섬기니까 부모님이 나를 향해 주시고 베푸신 은혜들을 느끼고 깨닫는 것이죠. 줘 본 적이 없으면 내가 남에게 받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믿음은 주님이 하실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인정하고 내가 할 일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이 하신 일이 어떤 것이든 신뢰합니다. 내 생각과 달라도 그것은 주님의 일이니까요. 반면, 나의 할 일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주어진 자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비록 결과가 어떨지 알 수 없어도 말이죠. 그것이 오늘 내게 맡겨진 일이니까요. 그렇게 오늘을 살다 보면 주님이 하시는 일과 만날 때가 있겠죠.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주님께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믿음은 나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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