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8:10~15 어떤 사람이 이것을 보고서,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있습니다." 요압이 자기에게 소식을 전하여 준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그를 보았는데도, 왜 그를 당장에 쳐서 땅에 쓰러뜨리지 않았느냐? 그랬더라면, 내가 너에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였다. "비록 은 천 개를 달아서 저의 손에 쥐어 주신다고 하여도, 저는 감히 손을 들어 임금님의 아들을 치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우리 모두가 듣도록, 장군님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누구든지 어린 압살롬을 보호하여 달라고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임금님을 속이고, 그의 생명을 해치면, 임금님 앞에서는 아무 일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에, 장군님까지도 저에게서 등을 돌릴 것입니다." 그러자 요압은 "너하고 이렇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하고 말한 뒤에, 투창 세 자루를 손에 들고 가서, 아직도 상수리나무의 한가운데 산 채로 매달려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꿰뚫었다. 요압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이 열 명도 모두 둘러싸고서, 압살롬을 쳐서 죽였다.
또 무명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만큼 저자의 의도가 담긴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꼭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죠.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매달려 꼼짝달싹도 못하는 압살롬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보고를 하죠. 그랬더니 요압이 당장 죽이지 않았다고 호통을 칩니다. 이에 '어떤 사람'이 대답하죠.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 달라는 다윗의 간곡한 부탁을 들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요압 군대의 일원이었을 거예요. 요압이 어떤 마음으로 지금 전쟁에 임하는지를 잘 알았을 겁니다. 심지어 그는 요압의 속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듯하죠. 이런 구절이 나와요. 13절 말씀인데요. 만약 압살롬을 죽인 사실이 다윗의 귀에 들어갔을 때 그의 부탁이 무시된 것에 대한 원인을 요압은 다윗 앞에서 아마도 압살롬을 직접 죽인 자신에게 그 책임을 돌렸을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요압이 기회주의자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요압은 아마도 자신의 병사들에게 상을 걸었던 것으로 보여요. 압살롬을 죽이는 자에게는 훈장을 주겠다고 말이죠.
사실 '어떤 사람'은 그리 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직속상관에 대한 말만 잘 들으면 되죠. 그것이 훨씬 쉽고 간단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더 이로울지도 모릅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충성이라고 말하죠.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변명할 거리들도 많죠. '나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이죠. 분명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아는데도 직속 상사의 명령에 거부하지를 못합니다. 먼 법보다 주먹이 더 가깝듯이 대의명분보다 눈앞의 관계가 더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어쩌면 그렇게 사는 것이 속 편하죠.
그런데 이 '어떤 사람'은 큰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상관이 요압보다 더 높은 다윗을 생각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명령보다 그 너머에 있는 명령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죠.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사는 제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행할 명령을 받았지만 이 땅의 관념과 습관에 더 가까워 모른 척하고 사는 개인적 모습이 부끄럽게 떠올랐어요. 늘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며, 늘 몰랐다며 눈앞에 보이는 명령들에 집중했던, 이름도 없는 '어떤 사람'보다 못한 내 모습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게 뭐라고 가슴에 달아주는 명예 훈장에 눈이 멀어 거짓 이력과 가짜 학력, 부풀린 성과와 이미지로 자신을 덧칠합니까? 그게 뭐라고 돈에 양심을 팔고 자신의 가치관을 팝니까? 그러면서 늘 몰랐다고, 그게 맞는 줄 알았다고, 할 수 없었다고 변명만 늘어놓는 모습이 제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조금만 더 넓고 높은 뜻을 품으며 살면 안 될까요? 내 눈앞에 보이는 상황보다 조금 더 깊은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살면 어떨까요? 내 손에 잡히는 욕망보다 조금 더 넓은 주님의 가치와 철학을 품고 살면 안 될까요? 지금보다 조금 더 넓게, 지금보다 조금만 더 깊게,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 조금만 더 높고, 오늘 느끼는 일보다 조금 더 많은 일들을 생각하며 살면 안 되겠습니까? 그것이 주님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면 어떨까요?
한 끗 차이입니다. 찰나의 순간이죠. 지금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다면, 내 앞에 놓인 것 너머에 일하시는 주님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 우리의 믿음과 소망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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