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5:30~37 다윗은 올리브 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는 올라가면서 계속하여 울고, 머리를 가리고 슬퍼하면서, 맨발로 걸어서 갔다.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도 모두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때에 누가 다윗에게, 압살롬과 함께 반역한 사람들 가운데는 아히도벨도 끼여 있다는 말을 전하자, 다윗이 기도하였다. "주님, 부디, 아히도벨의 계획이 어리석은 것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다윗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산 꼭대기에 다다르니, 아렉 사람 후새가 슬픔을 못 이겨서 겉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뒤집어쓴 채로 나아오면서, 다윗을 맞았다.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나와 함께 떠나면, 그대는 나에게 짐만 될 것이오. 그러니 그대는 이제 성으로 돌아가서, 압살롬을 만나거든, 그를 임금님으로 받들고, 이제부터는 새 임금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시오. 이제까지는 임금의 아버지를 섬기는 종이었으나, 이제부터는 그의 아들, 새 임금의 종이 되겠다고 말하시오. 그것이 나를 돕는 길이고, 아히도벨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는 길이오. 그곳에 가면,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그대와 합세할 것이오. 그러므로 그대가 왕궁에서 듣는 말은, 무엇이든지 두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에게 전하시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의 아들 둘을 그곳에 데리고 있소. 사독에게는 아히마아스가 있고, 아비아달에게는 요나단이 있으니, 그대들이 듣는 말은 무엇이든지, 그들을 시켜서 나에게 전하여 주시오." 그리하여 다윗의 친구인 후새는 성으로 들어갔다. 같은 시간에 압살롬도 예루살렘에 도착하였다.
오늘도 다윗의 회복은 계속됩니다. 그는 올리브 산을 오르며 울었습니다. 왕의 체면을 내려놓았고, 주님 앞에 맨발로 선 모세처럼 겸손하게 회개와 회복의 자리로 들어가죠. 이 짧은 장면이 저에게는 극적인 반전의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무엇이 그의 회복을 도왔을까요? 이미 묵상했듯 주위의 사람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믿음의 친구들, 그들이 다윗을 회복케 하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심을 일깨워줬고,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의 신비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진정한 회개의 자리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죠.
눅 17:3 믿음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내가 죄를 지었을 때 나를 꾸짖어 줄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은혜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이전에 믿음의 형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그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는 거죠. 그게 공동체의 묘미이고 이웃을 만드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이 오늘 본문에 있습니다. 회복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려주는 비밀이 있어요. 그것은 이제야 다윗이 무엇인가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식들의 문제가 일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던 다윗이었습니다. 남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했던 다윗이죠.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에도 그는 마치 손을 놓고 있는 사람처럼 무기력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릅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심복인 후새를 압살롬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죠. 아마도 후새는 다윗에게 중요한 책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를 통해 반역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죠.
여기서 다윗의 중요한 패턴이 나와요. 이것은 다윗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영적인 과정입니다. 분명히 다윗은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선택이죠. 이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신이 손을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들을 계획합니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선택이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마치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이 너희가 아니라 나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그러나 전쟁은 우리가 직접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고 그분이 주시는 승리를 맛보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 맡겼다 함은 나의 최선이 쓰임 받는다는 뜻입니다. 내가 수고를 다하고 그분이 그 수고를 사용하실 때 비로소 하나님께 맡긴 나의 믿음이 실현되는 것이죠.
우리는 오늘 이 아침,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오늘의 삶을 주님께 맡기고 인도해 주실 것을 간구하죠. 그 말은 내가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최선이 쓰임 받으면 그는 은혜로 돌아올 것이고, 나의 최선이 잘못된 것이면 다시 바로잡고 그분의 뜻에 맞춰가는 것이 영성입니다. 마치 과학자들이 최선을 다한 실험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듯이 말이죠. 그 과정에는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쓰이죠. 다만 '최선'을 다한 실패와 '최선'을 다한 성공이 있을 뿐입니다. 쓰임 받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수고입니다.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복됩니다. 맡기고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삶이 믿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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