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15:22~29 그러자 다윗이 잇대에게 말하였다. "그러면 먼저 건너가시오." 그리하여 가드 사람 잇대도 자기의 부하들과 자기에게 딸린 아이들을 모두 거느리고 건너갔다. 이렇게 해서 다윗의 부하들이 모두 그의 앞을 지나갈 때에, 온 땅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왕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그의 부하도 모두 그의 앞을 지나서, 광야 쪽으로 행군하였다. 그런데 그곳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온 모든 레위 사람과 함께, 사독도 와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았다. 아비아달도 따라 올라와서, 다윗의 부하가 도성에서 나아와서, 왕의 앞을 모두 지나갈 때까지 거기에 있었다. 그런 뒤에 왕이 사독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궤를 다시 도성 안으로 옮기시오. 내가 주님께 은혜를 입으면, 주님께서 나를 다시 돌려보내 주셔서, 이 궤와 이 궤가 있는 곳을 다시 보게 하실 것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싫다고 하시면, 오직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나에게서 이루시기를 빌 수밖에 없소."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말하였다. "사독 제사장님께서는 선견자가 아니십니까? 성 안으로 평안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제사장께서는 아비아달 제사장과 함께 두 분의 아들 곧 제사장님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 제사장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가십시오. 두 분께서 나에게 소식을 보내올 때까지는, 내가 광야의 나루터에서 머물고 있을 터이니,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그리하여 사독은, 아비아달과 함께 하나님의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다 놓고서,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했나요? 다윗에게는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더없이 귀중한 친구들이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이들이 다시금 다윗의 여정에 동참하는가 하면 오늘은 하나님의 궤를 지키는 레위 사람들까지 가세하죠.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메고 다윗의 앞에 등장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이 세운 왕은 다윗뿐이라는 듯이 말이죠. 이 장면이 참 눈물 나는 장면 같습니다. 비록 흔들리는 믿음과 희미해지는 영적 안목으로 고생하고 있는 다윗이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다윗의 편입니다. 이는 단순히 옛정은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하나님의 영이 아직 다윗에게 머물러 있음을 강조하려는 듯 보여요.
그 때문일까요? 다윗은 잃었던 통찰력을 되찾는 듯 보입니다. 그는 드디어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다. 어떤 주술적인 해결이나 세력의 결집보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대로 자신의 길을 모색하려고 하죠.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되돌려 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광야에 머물기로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로 한 것이죠.
다윗의 위대함은 그의 통찰력에 있었습니다. 그 통찰력은 다름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윗의 고백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죠.
"내가 주님께 은혜를 입으면, 주님께서 나를 다시 돌려보내 주셔서, 이 궤와 이 궤가 있는 곳을 다시 보게 하실 것이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싫다고 하시면, 오직 주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나에게서 이루시기를 빌 수밖에 없소."
지금까지 다윗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가족들에게 소외되어 목동으로 살 때에도, 사울에게 쫓겨 죽음의 문턱에 놓였을 때에도, 그는 주님의 은혜를 간구했고, 또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자신의 삶이 이루어지기를 구했습니다. 눈앞에 놓인 이익에 급급하지 않았고, 다급한 생명의 위협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라는 속삭임에 굴하지 않았고, 실수해도 여전히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분이 살아계시면 정의가 이루어질 것을 확신했고, 그분이 뜻하시면 반드시 길이 열림을 확신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통찰력이었죠. 오늘 그의 고백은 그의 통찰력이 아직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통찰력이 또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여는 시작이 되죠.
여러분의 통찰력은 어떠신가요? 오늘 내 앞에 놓인 문제로 마음 상하고 괴로워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은 모습은 아니신가요? 몰려온 아픔에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절망의 그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습니까? 나의 통찰력은 늘 그래요. 늘 극단적이고, 늘 절망적이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굴고, 마치 내가 정답이라는 듯 마지막처럼 결론을 내리죠. 될 수 있는 대로 온갖 부정적인 것은 다 끌어다 모아놓은 것이 내 통찰력입니다. 그래서 늘 내 통찰력은 나를 슬프게 하죠.
오늘 새로이 통찰력을 동원하는 다윗을 배워보면 어떨까요? 이제 좀 살 것 같고, 편안할 것 같은 시기에 찾아온 어려움으로 절망의 나래가 펼쳐질 그때, 그의 통찰력이 살아났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머무는 한 어떤 상황에도 쓰러지지 않음을 아는 통찰력, 아무리 잘 나가고, 미래가 창창해 보여도 주님이 싫다고 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아는 통찰력, 그 믿음의 통찰력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통찰력이 내 삶의 기초가 되기를 바래요. 그 통찰력이 어려움을 돌파하고 낙심을 깨뜨리며 어둠 속에 빛나는 빛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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