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첫 설교입니다.
이 첫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부르신 목적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게 되죠.
그 구절은 13절입니다.
“너희는 나를 떠났고, 다른 신을 택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어쩌면 이 구절이 예레미야서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일지도 몰라요.
첨언하여 설명할 것들이 있지만, 뼈대는 그렇습니다.
이 중심 메시지는 예레미야 설교의 시작부터 등장하죠.
5절입니다.
“나를 떠났고, 우상을 쫓았다”
같은 말이죠.
이 핵심 뼈대를 각각 설명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13절에는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으로, ‘다른 신’을 ‘깨진 웅덩이’로 표현합니다.
5절에서도, ‘하나님’은 허물없는 가치, 즉 실재하는 진짜로 표현하고요.
‘우상’은 ‘헛된 것’, 즉 실체가 없는 것으로 표현하죠.
우상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을 하는데요.
5장의, “헛된 우상을 쫓아다니며, 자신들도 허무하게 되었느냐?”는 표현은 1장에서도 등장했던 언어 유희적 표현입니다.
이렇게 번역하면 잘 느껴지지 않는데요.
최대한 원문의 느낌을 살린다면 이렇습니다.
“바람피더니 바람맞았네?”
좀 안 좋은 표현이지만 뭐 이런 느낌입니다.
원문에 보면 헛되다는 표현의 단어가 [헤벨]인데요.
그 단어는 주로 우상을 나타낼 때 쓰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은 곧 헛된 것이죠.
이 구절이, “헤벨하더니 헤벨되었네?” 이런 표현이거든요.
“우상을 쫓더니 남는 것이 없다.”라는 뜻인 거죠.
오늘은 그냥 단순하게 말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말이 단순하니까요.
바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입니다.
주님을 심으면 생수가 나고,
우상을 심으면 깨진 항아리에 물 붓듯 한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 진리의 무서움이 보입니다.
제사장들은 나 주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지 않으며,
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알지 못하며,
통치자들은 나에게 맞서서 범죄하며,
예언자들도 바알 신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우상들만 쫓아다닌다고요.
요즘 말로 바꾸면 이렇죠.
목사가 하나님을 모르고,
법을 다루는 사람이 정의가 무엇인지 모르며,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를 받은 자들이 그 은사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이들 오히려 세상을 선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욕심 때문입니다.
당시 우상(헤벨)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신은 주로 바알이었어요.
바알은 풍요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풍요를 더 쫓았던 셈입니다.
목사들이 하나님보다 풍요를 더 갈망하죠.
목회로 돈을 벌려고 하고, 교회로 크기 싸움을 하고요.
작은 교회, 가난한 교회는 가려고 하지도 않죠.
법을 다루는 사람들은 양심보다 자신들의 처세에 더 밝습니다.
돈과 명예를 위해 재판의 형평성이 기울죠.
욕심 때문입니다.
어둠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말씀드렸죠?
욕심이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빛이 없어진 상태가 어둠이듯,
하나님을 잃으면 욕심이 그 자리를 차지하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늘 묵상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이 때문인지도 몰라요.
우리로 하여금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말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영성에서 요행은 없습니다.
저절로 영성이 깊어지지 않아요.
하나님의 법칙은 단호합니다.
심는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을 심으면 하나님이 나고, 우상을 심으면 우상이 납니다.
생명의 하나님을 심으면 내가 그 생명으로 살고,
욕심의 우상을 심으면 내가 그 욕심으로 죽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심으면 내가 그 사랑으로 용서받지만,
경쟁의 우상을 심으면, 내가 그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주식 하는 분 계신가요?
혹, 주식을 나쁘게 보는 분들이 계신 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식은 도박도, 불로소득도 아닙니다.
정당한 시장경제사회에서 합법적 경제활동이죠.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주식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2% 미만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는 주식하면 모두 다 돈을 버는 줄 알죠.
그 2%에 바로 내가 속할 것 같은 착각을 하죠.
문제는 그 착각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착각이 나를 욕심의 장으로 내몰죠.
주식은 경제활동이지 돈벌이가 아닙니다.
나의 직장이 내 재능을 기부하는 사회공헌활동이지 돈벌이가 아니듯 말이죠.
그러나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내가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그 길은 완전히 다릅니다.
또한 결과도 다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엇을 심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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