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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묵상 07- 오늘도 조금만 더 멀리보며 삽시다.예레미야 2: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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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국시대에 뛰어난 정치가가 네 사람 있었습니다.
이를 전국사군자라고 하죠.
그중에 첫째로 꼽는 사람이 제나라 맹상군입니다.
왕의 아들이면서 정승을 지낸 리더십이 뛰어난 인물이었죠.
그는 권력가이기도 했지만 인덕도 있어서
주위에는 재능이 많은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맹상군의 세력이 커지자 제나라 왕은 그를 경계하여 파직시키는데요.
게다가 나라 밖으로 추방까지 당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세월이 조금 흘러 맹상군이 필요하게 된 왕은
그의 지위를 복권시켜 다시 제상의 자리에 앉히는데요.
그러자 그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곁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맹상군이 이렇게 한탄했다고 하죠.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염치로 다시 나에게 오는가?”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말의 한자성어는
부간부념통(附肝附念通)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리를 바꾼다는 뜻이죠.
맹상군 주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이 맹상군이 아니라
그의 권력이나 세력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간사함은 양심이 없어지죠.

안목이라는 단어가 있죠.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눈이라는 뜻입니다.
이 안목에는 거시(巨視)적 안목이 있고, 근시(近視)적 안목이 있는데요.
이 두 가지는 늘 공존합니다.
한 나라의 경제를 살필 때에도 거시적인 차원과 근시적 차원이 동시에 구상됩니다.
그래서 경제를 논할 때 한 가지만으로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근시적 처방만을 한다면 지금 입에는 달지만 몸이 상하게 되고,
거시적 차원만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 당장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죠.

믿음은 거시적인 것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분이 퉁명스럽게 대하면 기분이 나쁘죠.
누군가 인사를 받아 주지 않으면 맘이 상하고요.
사람의 반응에 민감할수록 나의 감정은 흔들립니다.
그런데 나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쁜 서비스에 불쾌한 나의 반응과는 달리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제 가까이 있습니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나 보지”
“나를 못 봤나 보지”
마치 무신경하고 무감각한 것 같은 이 반응에 머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리곤 생각하죠.
나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나는 지금 작은 장면을 보는 것이고, 그는 더 큰 장면을 보는 것이죠.
영화 같은 것을 보면 제3자의 입장에서 보잖아요.
이 사람이 왜 이런 반응이 나왔는지에 대한 뒷배경을 보여주기도 하죠.
그러면 우리의 이해는 훨씬 넓어집니다.

우리의 반응이 근시적인 이유가 있어요.
그것이 다 ‘나’를 위한, ‘나’ 중심의 사고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내 안위, 내 복, 내 재산, 내 감정에 빠지면 다른 것이 안 보입니다.

어제 주일학교 어린이에게 맞았어요^^
다른 아이 기도해주고 있는데 누가 제 머리를 치더라고요.
엄청 아팠어요^^
게다가 머리니 아픔보다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그게 어린아이여도 그래요.
그런데 내 아픔, 내 기분에 묶이면 어찌 되는 줄 아세요?
화가 나고 응징을 해야 하죠.
비록 아이일지라도 훈계한다는 핑계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게 되죠.

그런데 조금 넓은 의미로 보면 어떨까요?
그 아이는 왜 나를 때렸을까요?
나에게 다가오고 싶어서, 나에게 아는 척하고 싶어서 아닐까요?
더 나아가 나도 기도 받고 싶다는 의미 아닐까요?
우리 아이들은 제가 기도해 주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나를 보면 으레 무릎에 앉죠.
그런 관점이라면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에게 오는 것이고, 나를 목사 대접하는 거잖아요.
나를 인정해 주고, 나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잖아요.

믿음은 거시적인 안목이에요.
조금 더 넓게, 조금 더 깊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믿음이에요.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이웃을 향하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그래야 왔다 갔다 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어쩌면 우리에게 오늘 그것을 요구하시는지 몰라요.
조금만 더 멀리 보라고요.
조금만 더 깊이 보라고요.

오늘도 조금만 더 멀리 보며 삽시다.
조금만 더 넓고, 깊게 보며,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더 내가 아닌 이웃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삽시다.
그러면 사랑과 이해, 긍휼과 용납의 마음이 커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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