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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묵상 03- 팔을 걷어붙이십시오. 예레미야 1: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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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시는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여러 번 말씀하시죠.
그 말씀 중에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가 해야 할 행동을 제시합니다.
이 행동은, 예레미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제시하시는 행동 양식이기에 중요합니다.
그것은 “허리에 띠를 띠고 준비하라”는 것이죠.

에베소서를 보면,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갑옷을 입으라는 뜻이죠.
그때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바로 허리띠죠.
“허리에 띠를 띠다”라는 말은 유대식 관용어구입니다.
이 관용어구를 제가 번역했다면 아마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팔을 걷어붙여라”
이 말의 뜻을 아시죠?
이 말이 옷을 위로 올리라는 소리가 아님은 삼척동자도 알 것입니다.
이처럼 허리에 띠를 띠라는 말 또한 허리띠를 하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이제 행동을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직책이 아닙니다.
그것은 직분입니다.
굳이 직책과 직분으로 나눠서 설명 드리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는 뜻에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행동 양식이지, 이름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동사이지 명사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행동하는 영성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예레미야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3가지입니다.
일어나고(GO), 말하고(SAY), 두려워하지 말라(DON’T BE AFRAID)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사명을 당부하셨죠.
지상명령이라는 부제가 붙은 말씀입니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가라’라는 말은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죠.
다시 말해, 너의 직분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해외로 가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주어진 선교지,
나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고 믿습니다.
‘말하라’는 의미 또한 그리스도를 삶으로 드러내라는 의미죠.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 큰 외침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안다고 했으니까요.
문제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일어나, 말하게 하는 원천적 힘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죠.

어제 다루지는 않았습니다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2가지를 보여주시죠.
하나는 살구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끓는 가마였습니다.
이 장면이 참 재미있어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언어유희를 구사하시거든요.
‘살구나무’라는 단어는 ‘샤케드’입니다.
새번역성경을 보면, ‘살구나무’에 관주로 친절하게 적어놓았어요.
또 적어놓은 관주가 있는데, 그것은 ‘지켜보다’라는 단어입니다.
그것은 ‘쇼케드’라고 되어 있네요.
발음이 비슷하죠?
사실 이 단어는 자음이 같습니다.

히브리어는 자음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모음을 붙여서 읽죠.
어떤 모음을 붙이느냐에 따라 발음이 달라질 뿐입니다.
신기한 것은 그 모음이 고대에는 있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냥 자음을 보고 구전으로 발음을 했죠.
‘ㅇㅂㅈ’ 이것을 보고 ‘아버지’라고 읽는 식이죠.
그래서 히브리어는 보는 문자가 아니라 읽는 문자입니다.
성경을 필사할 때, 필경사들은 꼭 읽으면서 적었죠.
발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발음을 잊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입에 담지 않았거든요.
발음을 하지 않다 보니 정확한 발음이 뭔지 모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하나님은,
요드 헤이 바브 헤이 4개의 자음인데 발음을 몰라요.
현재는 여기에 임의로 모음을 붙여 여호와가 된 거죠.
이야기가 좀 샜습니다.
암튼 살구나무라는 표현은 언어적 유희입니다.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의 단어죠.

끓는 가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곧 올 포로기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2가지를 보여주셨어요.
하나는 하나님이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고난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이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우리를 눈동자처럼 지키신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아픔이나 고난까지도 그의 손에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우리가 불안해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을까봐'죠.
우리가 두려운 것은 '이 아픔이 멈추지 않을까봐' 아닌가요?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라는 두려움 말이죠.
그러나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고,
모든 것이 주님이 컨트롤하신다면 어떨까요?
나를 사랑하는 그분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나를 지키신다면,
나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기시는 그분의 손에 모든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세요.
주저하지 마세요.
내가 어떤 길로 가야 하나님이 도우실까? 생각하지 마세요.
진짜 신앙은 내가 가는 길에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믿는 겁니다.
비록 위험한 길을 간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지키실 것을 믿고,
비록 실수한다 할지라도 주님이 컨트롤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죠.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으로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매일 아침 여러분의 이름이 제 마음에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어떤 모습이든지, 어떤 상태이든지, 여러분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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