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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묵상 06- 눈치라도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2:2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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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혹시 여러분이 사귀어야 한다면 어떤 사람과 사귀겠습니까?
눈치 없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
뭐 각자마다 생각은 다르시겠죠?
그러나 의외로 많은 분이 눈치 없는 사람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눈치 없는 사람들의 특징들이 있죠.
모든 사람이 아는데 그 사람만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비언어적 대화가 많습니다.
표정, 느낌, 분위기, 상황 등이 모두 대화의 한 방법들이죠.
간혹 입으로 직접 말하기 힘든 것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비언어적 대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언어적 공감 능력을 가져야 하죠.
그런데 눈치 없는 사람들의 경우 이를 잘 모릅니다.
표정을 읽을 줄 모르고,
느낌이나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죠.

눈치가 없으니 말도 가려 할 줄을 몰라요.
자기 생각대로, 자기 위주로 말을 하죠.
그걸 자기는 직설적인 성격이라고 말하죠.
그러나 그것은 직설적인 것이 아니라 눈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눈치가 없다는 것은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기도 해요.
밤낮없이 일하며 공부하는 친구 앞에서
아버지 돈 자랑을 하기도 하고,
농담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여자친구의 과거를 늘어놓기도 하죠.
분명히 싫다고 했는데 그 일을 반복하고,
자신의 감정은 잘 기억하면서, 남의 감정은 잘 기억 못 하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쫓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경고와 눈치를 주십니다.
때론 수모를 당하게 하시고, 때론 아픔을 주시기도 하죠.
마치 잘못한 자녀에게 벌씌우듯 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자녀들의 잘못에 대해 혼을 낼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잘못에 대해서는 즉시 알려주고 지적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많은 부모가 그것을 미룹니다.
그리고 날을 잡아 한꺼번에 혼을 내죠.
부모에게는 자녀의 잘못이 쌓여 혼을 내는 것이겠지만
자녀들은 그 잘못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잘못을 시인하라 다그쳐도 자녀들은 모릅니다.
시간이 흘렀고, 딱히 어떤 일인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도 부모가 다그치니까 잘못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체벌은 아무런 효과가 없죠.
오히려 화내고, 벌주는 부모에 대한 이해 못할 감정만 쌓이죠.
자녀에게는 히스테리 부리는 부모만 남습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 보죠.
자녀가 잘못을 했습니다.
그것을 부모가 지적해 줍니다.
그런데 자녀가 알아듣지를 못해요.
그러면 어떨까요?
혼을 내기도 하고, 벌씌우기도 하고, 때론 말을 안 하기도 합니다.
혹시 밥을 안 주는 경우도 있을까요?
그건 좀 심하죠?
아무튼 ‘내가 화났다’는 표시를 팍팍내죠.
그런데 자녀가 그것을 모르면 어떨까요?
왜 화가 났는지 모르면요?
아니 화가 났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요?
답답하시겠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자녀는 부모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왜 화를 내지?” “엄마는 신경질적이야”

오늘 본문이 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모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잘못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는 그 눈치가 없습니다.
오히려 왜 하나님이 화를 내시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하죠.
더 나아가 하나님은 히스테리컬하다 규정짓죠.
나 때문임을 모르고 말이죠.

30절에 이렇게 적혀 있네요.
렘2: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렸으나 헛수고였다. 옳게 가르치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눈치를 줄 때가 귀한 것입니다.
지적을 받을 때가 좋은 때에요.
아직 나를 위한 기회가 남아있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시련이 있을 때가 더 사랑받는 때고,
어쩌면 벌을 받을 때가 존중받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헤어지면 더이상 눈치 주지도 않고,
떠나가면 더이상 책망도 없습니다.

잘못이 많아도 눈치는 있어야 돌아오고요.
미련해도 눈치는 있어야 새로워집니다.
능력이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많은 지식이 없어도 괜찮아요.
그러나 눈치는 있어야 합니다.
이 책망이 사랑인지 저주인지는 분간할 눈치가 있어야 하고,
이 고난이 나락인지 기회인지는 구별할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영적인 눈치가 살아있길 기도합니다.
어떤 일, 어떤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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