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38-53
묵상 하나, 자기를 위하여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오늘 본문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였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아도니야의 모든 계획은 일거에 수포로 돌아갑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입니다.
그도 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습니다.
이미 읽은 앞절의 내용을 보면
그가 왕위를 꿈꾸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아주 잘 생겼고, 서열도 높았습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다음 왕은 나다”라고 외치고 다녔고요.
게다가 후계자처럼 병거와 호위병들을 몰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도니야의 그런 모습에 대해
아버지 다윗이 한번도 꾸짖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일단 아버지가 아도니야의 이런 행위를
알고 있었다는 전제가 성립합니다.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인정에 가깝죠.
다시 말하면 아도니야는 착각하기에 딱 좋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의 바로 위의 형인 압살롬은
아버지를 내몰고 자신이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 반란은 거의 성공할 뻔 했습니다.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나 모두 왕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왕이 되지 못했을까요?
물론 수많은 이유가 있겠죠?
그러나 이를 솔로몬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죠.
반대로 솔로몬 또한 왕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와 아도니야가 다른 점은 뭘까요?
성경에서만 찾는다면 바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송명희 시인의 찬양시 가운데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주님을 위하여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위하여 구하는 자는 잃어질 것이나
주님을 위하여 버리는 자는 채워지리라
목숨을 위하여 일하는 자는 빼앗길 것이요
주님을 위하여 숨지는 자는 살 게 되리라
자기를 위하여 꿈꾸지 마세요.
주님을 위하여 꿈을 꾸세요.
그러면 주님이 그 꿈의 자리로 인도하실 겁니다.
자기를 위하여 일하지 마세요.
남을 위하여 일하세요.
그러면 주님이 여러분을 일하시도록
필요한 것들을 채우실 겁니다.
묵상 둘, 선한 뜻에는 선한 사람이 모이고, 악한 뜻에는 악한 사람이 모입니다.
묵상을 마치고 성경을 덮었는데요.
갑자기 새로운 묵상이 제 안에 몰려와 다시 적습니다.
아도니야가 아무리 왕이 되고자 해도
따르는 이들이 없으면 아마도 힘들었을 겁니다.
오래전부터 왕을 꿈꿨다면 아마도 자신의 편들을 만들어 놨겠죠?
그리고 자신의 편은 그가 왕위를 선포하자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아도니야의 편이 되었을까요?
그 질문이 제가 오늘 다시 성경을 펴들고 묵상하게된 이유입니다.
요압은 다윗의 최측근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아도니야의 편을 들었을까요?
그 이유의 단초는 한 사건에 있습니다.
다윗을 쫓던 사울이 죽고 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왕노릇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스보셋의 측근이었던 군대장관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였어요.
이 때문에 요압은 복수심에 불타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와
그의 수하로 들어가길 청하자 다윗이 받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죠.
그래서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아브넬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일로 요압과 다윗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죠.
또 제사장 아비아달은 왜 아도니야를 따랐을까요?
이 또한 제사장 사독과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윗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아비아달이지만
이제 제사장의 권위가 사독으로 넘어가는 추세였습니다.
그는 이에 대한 불편함이 마음속으로 있었을테지요.
그 불편함의 발로가 바로
아도니야의 편에 서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어떤 일을 도모하려 할 때 갑자기
나의 편들이 많아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이 나의 뜻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복수, 질투심, 혹은
다른 연유로 인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마디로 나의 편이 아니라
자기의 욕망에 의해 함께 하는 경우인 셈이죠.
이런 이들은 한순간에 없어집니다.
이런 경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혹시 나의 편이 많다고 착각하십니까?
나를 뒤 봐줄 사람들이 많다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여기고 계십니까?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대로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요.
정말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좋게 보실 때뿐입니다.
그분이 나를 기뻐하시면 사람들도 나를 기뻐합니다.
그분이 나를 좋게 보시면 사람들도 나를 좋게 봅니다.
나의 편은 없어요.
내가 주님의 편에 설 때,
그 때 주님의 편에 선 모든 이들이 나의 편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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