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8-46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도니야 일당에 대한 숙청작업이 그 내용입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와 함께 요압과 아비아달을 정리하지요.
요압과 아비아달이 아도니야를 도왔던 이유를 지난 수요일 묵상에서 말씀드렸죠?
이제 요압을 대신하여 브나야가 군사령관이 되었고,
아비아달을 대신하여 사독이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한 사람이 더 등장합니다.
그는 게라의 아들 시므이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려면 시므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잠깐 살펴봐야 합니다.
시므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사무엘하16장에서 입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 쫓겨 도망자 신세가 되는데요.
예루살렘을 떠나 바후림에 거할 때, 시므이가 등장합니다.
그가 도망자 다윗을 향해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돌을 던지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돌을 던지는 행위는 마치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돌을 던져 죽이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한마디로 다윗을 조롱하는 것이죠.
성경은 그가 사울왕과 인척관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런 행동에는 사울왕의 폐위와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등장하는 때가 있습니다.
한참을 지난 사무엘하19장에 다시 등장하죠.
그 사이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암살롬의 반역은 제압되고 다윗은 다시 왕으로 복귀하게 되죠.
사무엘하19:15은 다윗이 왕으로 복귀하려 요단에 들어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유다 족속들과 함께 다윗을 맞이하려고 급하게 내려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게라의 아들 시므이입니다.
전에는 돌을 던지며 저주하던 그가 지금은 땅에 엎드려 절하며 다윗을 칭송합니다.
시므이의 모습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입니다.
힘이 있을 때는 그에게 붙고, 힘이 없어지면 저주하고 버립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면 붙잡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밀쳐내 버리죠.
이득에 따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합니다.
항상 눈앞의 이익에 약합니다.
거시적이기 보다는 근시안적일 때가 많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철저하게 계산적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신앙인은 정직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청렴해야 하죠.
그리고 거룩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관성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푯대를 향해 나가는 것처럼 주님을 향한 일관성이 필요하죠.
일관된 진술, 일관된 가치가 정직이고요.
일관된 삶의 태도가 청렴이죠.
우리는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지쳐 쓰러지기도 합니다.
힘겨워 잠시 멈추기도 하고, 어려워 헤매기도 하죠.
그러나 일관성을 잃어버리면 길을 잃습니다.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려 할수록 일관성을 잃습니다.
어려움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기회주의자의 첫 목표거든요.
힘들지 않으려 할수록 우리는 일관성을 잃습니다.
힘들지 않고, 편하고 쉬운 것을 택하는 것이 기회주의자의 속성이니까요.
시므이처럼 처세에 강한 사람들을 영리하다고 이야기 할지 몰라요.
그것이 요령이라고 가르치는 이들도 있죠.
그러나 성경은 그런 삶을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시1:4)”고 말합니다.
결국 아무 의미도, 아무 가치도 없는 삶이란 것이죠.
기회는 내가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삶을 사세요.
우리는 오직 일관성 있는 길을 가고요.
그 길 위에 주님께서 기회를 여시는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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