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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열왕기상묵상

열왕기상묵상02]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사명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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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사명의 자리입니다.
(열왕기상 1:15-37)


언제나 사람들은 빈틈이 보이면 그것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는 경향을 띕니다. 다윗이 늙어 힘을 잃자 아들인 아도니야가 득세를 했던것 같습니다. 뭐 특별한 일이 아니지요. 언제나 권력에 관심있는 자들은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권력의 힘이 클때는 철저히 그 앞에 복종을 하고 그 권력의 힘이 약해지면 철저히 짓밟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가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다윗이 다른 것은 몰라도 아들농사는 참 어려웠구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압살롬에 이어 아도니야까지 죄다 권력의 난맛을 아는 영혼으로 키웠던 것은 다윗의 가장 큰 고통의 열매였겠죠. 더군다나 그 이유가 바로 자신의 씻을 수 없는 죄 때문임을 생각하면 다윗이 아도니야에게 아무말도 못한 것이 이해가 갑니다. 자식의 영적 문제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자식에게 부모는 가장 큰 영적 영향력의 자산입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될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인품이나 자질이 부족해서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그가 처세에 능한 사람이라고 낙인 찍을 만한 내용이긴하나 왕이 되려는 사람, 정치하려는 사람치고 처세에 능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오히려 이것은 다른 의미로 장점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가 왕으로서의 가장 큰 결격사유는 그의 인품이나 성향이 아니라 그가 왕의 자리를 무엇으로 보았는가라는 기초적인 질문에 있습니다. 그는 왕을 누리는 자리로 생각했습니다. 왕의 아들이니 당연하고, 장성했고, 인기도 있고, 따르는 사람도 있고, 갖춘 것도 있으니 권력은 누리는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 벌써 세를 과시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은 삶의 자리를 누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잘 만난 것, 시대를 잘 타고난 것은 자신에게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진 것들은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높거나 낮거나 많거나 적거나 그것은 내가 누릴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탁하시는 일을 감당해야할 사명의 자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어찌 왕이 되었을까요? 그가 지혜가 더 있어서요? 인품이나 성품이 더 나아서요? 말년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오기 힘들겠지요. 그가 왕이 된것은 다름아닌 하나님께서 그에게 성전을 짓는 임무를 태중에서부터 부여 하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누리는 자리로 생각하면 많아서 교만해지고, 적어서 좌절하는 비교의 전쟁터가 됩니다. 거기에는 쉼도 감사도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는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6:8)"라 하시는 주님의 부탁이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사명을 감당하는 자리입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사명을 맡기신 자리이고-얼마나 나를 신뢰하시면 더 어려운 자리를 주셨을까?-, 아프면 아픔의 사명을 맡기신 자리-아픔도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시는-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바로 사명의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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