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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37 - 이제 내가 열매를 거둘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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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6:1~5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자손을 막으려고 굳게 닫혀 있었고,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너의 손에 붙인다. 너희 가운데서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엿새 동안 그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아라. 제사장 일곱 명을, 숫양 뿔 나팔 일곱 개를 들고 궤 앞에서 걷게 하여라. 이레째 되는 날에, 너희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부는 동안 성을 일곱 번 돌아라. 제사장들이 숫양 뿔 나팔을 한 번 길게 불면, 백성은 그 나팔 소리를 듣고 모두 큰 함성을 질러라.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때에 백성은 일제히 진격하여라."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신 은혜를 느끼며 기쁘고 힘찬 하루 되시기를 빕니다.

 

이제 드디어 여리고성 전투가 시작됩니다. 여리고성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여리고성은 철옹성이라 불리는 천혜의 요새였어요. 그러니까 시작부터 쉽지 않은 싸움을 싸우게 된 것이죠. 그렇지만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전투의 전술전략을 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전술전략은 이랬습니다. 전투를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엿새 동안 그 성 주위를 날마다 한 번씩 돌라는 것이었죠. 그리고 일곱 번째 되는 날에는 한꺼번에 일곱 번을 돈 후에 큰 함성을 지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거 좀 이상하죠? 전술전략이라는 것이 어떻게 싸우고 어떤 부분을 공격하는지, 상대방의 약점은 무엇이며 우리가 집중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따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건 전투의 전술전략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해 보이죠. 그런데 이 전술전략이 완벽했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제가 아직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요. 이 전술전략의 화룡점정과 같은 특별한 묘책은 바로 하나님의 첫 일성,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너의 손에 붙인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는 뜻이죠. 

 

그런데 저는 이런 의문이 들어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리고에서 전쟁다운 전쟁, 싸움다운 싸움 없이 이기게 하신다면 왜 굳이 우리가 여리고성을 돌고, 왜 함성을 질러야 할까?라는 부분이죠. 그냥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시고 그냥 우리가 무너진 그 성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좀 밋밋하다면 여리고성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두고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장면을 보게 하는 것이죠. 그러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호를 하겠죠? 함성은 그때 나오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또 굳이 필요도 없어 보이는 산책 같은 행군도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왜 굳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리고성 주위를 돌라고 하셨을까요? 왜 우리의 함성이 필요할까요?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이미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손과 발로 인해 완성된다고 우리는 묵상한 바 있죠. 그와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하나님은 다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죠. 주님의 놀라운 은혜, 그분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실 그 미래의 결과는 그냥 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나의 손을 거쳐서 오는 것이죠. 적어도 최소한의 '나의' 행동을 통해 주님의 은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손과 발을 거쳐 주님의 능력이 이 땅에 실현되는 거죠. 

 

달란트의 비유는 종들이 주인의 돈을 가지고 이익을 내었다는 것이 주된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들이 주님의 능력을 진짜 능력 되게 했다는 점에 초점이 있죠. 그들은 어떤 식으로 일을 해도 이익을 남겼을 것입니다. 이미 주님은 그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전쟁의 승리를 주셨기 때문이죠. 다만 그것을 믿고 내가 용기를 내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천혜의 요새가 그저 주위를 돈다고 무너지겠습니까? 무슨 장풍도 아니고 나의 함성으로 쓰러지겠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우리 아닙니까? 이미 주님은 나에게 능력을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이 어찌 능력이 될 수 있겠어요.

 

주님이 주신 것은 능력의 기초이지 능력의 결과는 아닙니다. 그런 말 있잖습니까?

 

“자녀에게 고기를 잡아주면 한 끼 밖에 못 먹지만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먹고살 수 있다” 

 

이스라엘 탈무드에 나오는 말이라고 하죠. 어쩌면 하나님의 능력은 그렇게 우리를 통해 온전하게 이 땅에 세워지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나에게 주신 재능을 내가 발휘할 때 그 재능으로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주듯이 말이죠. 이게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되는 것이겠죠. 

 

이미 승부는 났습니다. 이미 주님은 주셨습니다. 이제 내가 열매를 거둘 차례입니다. 일어나 걸을 차례이고요. 자신 있게 소리칠 차례입니다. 그때 막혔던 담이 무너지고 없던 대로가 열립니다. 그때 사막에 강물이 만들어지고 광야에 길이 나죠. 오늘도 나의 용기가 주님 능력을 능력답게 만드는 통로 되길 원하고, 나의 말이 주의 사랑을 사랑답게 꽃 피우는 샘물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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