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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17 - 우리는 하나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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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2:2~7   그때에 여리고 왕은 이런 보고를 받았다. "아룁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몇 사람이 오늘 밤에 이 모든 땅을 정탐하려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전갈을 보냈다. "너에게 온 사람들 곧 네 집에 온 사람들을 데려오너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려고 왔다." 그러나 그 여인은 두 사람을 데려다가 숨겨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 사람들이 저에게로 오기는 했습니다만,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떠났는데,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빨리 사람을 풀어 그들을 뒤쫓게 하시면, 따라잡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여인이 그들을 지붕으로 데리고 올라가, 자기네 지붕 위에 널어놓은 삼대 속에 숨겨 놓은 뒤였다. 뒤쫓는 사람들이 요단 길을 따라 나루터까지 그들을 뒤쫓았고, 뒤쫓는 사람들이 나가자마자 성문이 닫혔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법 아침 바람이 서늘하죠? 환절기 건강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독감도 바이러스도 유행하는데요. 더욱 몸의 온도 조절을 잘하시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조금 어렵습니다. 어떤 난해함 때문은 아니에요. 이 본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난감함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의 요지가 '거짓말'이기 때문이죠. 아마도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탐하려 온 사실을 이렇게 신속하게 알기는 어렵겠죠.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리고 왕은 라합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라합의 집이 정탐하러 오는 자들의 최적의 길목에 있었던 것일까요? 아님 여러 사람에게 전갈을 보냈지만 성경은 라합을 중심 해서 보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튼 라합이 여관 주인이라는 문헌 기록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정탐꾼이 들어올 가능성이 가장 많았을지도 모르죠. 한편으로는 어쩌면 라합이라는 인물이 이전부터 여리고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관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 많았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집에 정탐꾼이 들었고, 그들을 숨겨준 채 여리고 왕에게 거짓말을 하는 라합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이 내용이 이렇게 길게 전개될 필요까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상하게 적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부분을 그냥 읽는 것으로 넘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별 묵상되는 내용이 떠오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자니 뭔가 이 본문을 통해 제가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묵상하는 방법 중에 말씀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본문을 몇 차례 읽는다고 말씀드린 적 있죠? 오늘도 몇 차례를 그냥 읽었습니다. 그리고 어렴풋이 생각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것은 이와 같은 거짓말이 이전에도 있었구나 싶었죠. 그것은 모세가 태어날 때 그를 받아준 산파의 거짓말입니다. 이 부분을 성경 말씀 그대로 적어 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15~21   한편 이집트 왕은 십브라와 부아라고 하는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는 히브리 여인이 아이 낳는 것을 도와줄 때에, 잘 살펴서, 낳은 아기가 아들이거든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이집트 왕이 산파들을 불러들여, 그들을 꾸짖었다. "어찌하여 일을 이렇게 하였느냐? 어찌하여 남자아이들을 살려 두었느냐?" 산파들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인들은 이집트 여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운이 좋아서,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불어났고, 매우 강해졌다. 하나님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집안을 번성하게 하셨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행위죠. 그래서 거짓말을 우리는 용납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거짓말은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아픔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라합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녀는 가나안 족속으로 여리고가 고향입니다. 그런데 여리고를 치려고 정탐하는 사람을 숨겨줍니다. 이 행위는 반역에 속하죠. 우리는 성경으로 이 사실을 읽기 때문에 큰 감흥이 없는데요. 만약 100여 년 전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탈하려고 할 때 그들의 정탐꾼을 숨겨줬다면 아마도 그 집안은 지금까지 친일파 소리를 들으며 민족의 반역자로 살아야 했을 거예요. 지금 라합이 딱 그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거짓말은 엄청난 거죠. 물론 출애굽기에 나오는 산파들은 같은 히브리 민족이었기에 그들의 거짓말은 일명 착한(?) 거짓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라합의 경우는 다르죠. 그럼에도 출애굽기의 말씀이 떠오른 이유는 그 속의 한 구절 때문입니다. 바로 17절입니다.

 

출애굽기 1:17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하지 않고, 남자아이들을 살려 두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도, 어떤 민족을 위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죠. 세상에 착한 거짓말은 없습니다. 어쩜 다 자기 입장에서 착할 뿐이지 거짓말은 다 거짓말이죠. 그러나 유일한 착한 거짓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거짓말이죠. 놀랍게도 우리가 내일 읽게 되겠지만 라합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거짓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한 때문이죠. 그분이 하실 일을 알고 있고,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한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은 민족도 나라도 뛰어넘는다고 말씀드렸죠? 그분이 계획하신 일은 내가 어느 편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군도 적군도 없어요.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는 성별도 나이도 신분도 계급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에는 사상도 이념도 가치관도, 심지어 교리까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리고 편도, 이스라엘 편도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편도 타 종교 편도 아니에요. 우리는 그리스도인 편도 비 그리스도인 편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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