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2:8~13 정탐꾼들이 잠들기 전에, 라합은 지붕 위에 있는 그들에게 올라가서 말하였다. "나는 주님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주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당신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주님께서 당신들 앞에서 어떻게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셨으며, 또 당신들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어떻게 전멸시켜서 희생제물로 바쳤는가 하는 소식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간담이 서늘했고, 당신들 때문에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 위에서, 과연 주 당신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 당신들도 내 아버지의 집안에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주님 앞에서 맹세를 하시고, 그것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징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리고 나의 부모와 형제자매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식구를 살려 주시고, 죽지 않도록 우리의 생명을 구하여 주십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은혜 주시는 주님을 경험하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금 라합이라는 인물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미 라합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었죠. 이방여인인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과 만났습니다. 그야말로 지금 대결을 목전에 둔 적군과 마주한 셈입니다. 그런데 라합은 그들을 숨겨주죠. 그리고 오늘 그녀가 그들을 숨겨주었던 이유가 드러납니다. 라합은 정탐꾼에게 이렇게 말하죠.
"나는 주님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들 때문에 공포에 사로잡혀 있고, 이 땅의 주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당신들 때문에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전투에 능한 대단한 정복자처럼 보이죠.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가나안 족속이 훨씬 전쟁에 능하고 가진 전투 장비도 강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철기 도구를 사용하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자신들의 간담이 서늘했다는 말이 이해되기 어려운데요. 그 이유는 금방 해소됩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이 큰 관심을 갖고 이스라엘을 바라보았던, 그리고 모든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워하며 바라보았던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이죠. 그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할 때 이집트 전역을 뒤흔들었던 재앙들, 사건들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으며, 하늘에서 먹을 것이 떨어지고, 날고 기는 거민들을 칼과 창이 아닌 믿음으로 물리치는 일들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확신했다는 겁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이 사실이 저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을 직접 겪은 이스라엘과 이를 멀리서 본 라합과 너무도 다른 입장이었기 때문이죠. 한번 그 상황을 떠올려 보시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땠나요? 홍해 앞에서 그들은 모세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집트를 배신한 것을 후회했죠. 홍해의 기적을 본 이후에는 어땠습니까? 얼마 못 가서 그들은 마실 물이 없다며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모세를 돌로 쳐 죽이고자 했죠. 서로 헐뜯고, 싸우고, 현실에 대한 불평과 의심과 부정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라합과 그 주변의 사람들은 어땠나요? 그 모든 일들이 기적이고 놀라운 역사임을 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일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고백하죠.
우리는 어떤가요? 돌아보면 받은 바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도하고 이루어진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렵고 힘겨울 때 울며 기도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눈물을 닦아 주신 일들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똑같은 일들이 내 앞에 놓일 때 우리는 그 전의 은혜를 다 잊고 또다시 불평을 늘어놓죠. 우리가 딱 이스라엘 그 꼴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불평들 뿐이고, 언제나 우리는 불만으로 가득하죠. 기적을 이루신 일들은 지나면 그만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은혜를 받고 나면 그만이죠.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런데, 라합이 압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알아요.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정작 경험했던 나는 모르는데 저 멀리서 바라보았던 이들이 압니다.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는 모르는데 남들은 다 압니다. 주님을 직접 대면해도 우리는 모르는 귀신은 압니다. 온갖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 사랑을 모르는데 세상은 다 압니다. 너무 사랑받아서 우리는 모릅니다. 너무 이해받아서 우리가 모릅니다. 너무 존중받아서 그래서 우리는 몰라요.
지금 내가 얼마나 사랑받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은혜와 복을 누리는지 아마도 우리는 끝까지 모를지도 모릅니다. 마치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식들처럼 말이죠. 남들은 그 사랑을 보며 부러워하는데 그 사랑을 누리고 있는 나는 오히려 불만에 가득하다면 어떨까요? 남들은 주님의 능력과 축복을 경외하고 떨며 바라보는데 정작 그 능력으로 살고, 그 축복으로 사는 우리는 오히려 부족하다고 떠드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오늘, 우리가 누리는 많은 기쁨과 웃음은 주님이 준비해 주신 선물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주님의 은혜임을, 소소한 삶 속에 주님의 축복이 임하심을 느끼는 성숙한 오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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