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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153 - 거절도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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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7:4~7   그러나 바로 그날 밤에 주님께서 나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종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으려고 하느냐? 그러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집에서도 살지 않고, 오직 장막이나 성막에 있으면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내가 이스라엘 온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닌 모든 곳에서,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한 이스라엘 그 어느 지파에게라도, 나에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두고 말한 적이 있느냐?'


성경상에서 다윗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던 인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님의 도우심으로 자랐습니다. 그의 시편 고백을 보면 어릴 적 목동 시절부터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양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고 고백하죠. 골리앗을 무찌를 때도,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도 하나님은 늘 그를 도와주셨습니다. 몇 번이고 목숨을 살려 주셨고 피 터지는 정치 현장에서 끝내 그를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 도우심을 받으면서도 다윗은 주님 앞에 엎드리고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 이외에 자신이 변변하게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을지도 모릅니다. 은혜가 느껴지고 감사가 절로 나오면 갖게 되는 당연한 마음이죠. 그리고 그가 생각해 낸 것은 하나님을 위한 집, 곧 성전을 짓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는 스스로 대견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자랑거리고 삼기 위한 발상은 아니었을 거예요. 마땅히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고, 감사가 넘치면 그것을 갚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까요. 다윗은 분명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이처럼 좋은 마음이 어디 있고, 이처럼 마음 쓰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도 다윗이니까 그나마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전에서 지냈던 선지자 나단도 다윗의 그런 행동이 아무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하는 선지자였어요. 그가 들어도 다윗의 생각과 뜻은 대견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도 기뻐하시리라 생각했겠죠.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단에게 즉시 나타나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계획을 멈추도록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둘러둘러 말씀하시지만 이 본문과 평행 본문인 역대상 17장에 보면,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죠. "내가 살 집을 네가 지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이죠. 

 

이 말씀에는 복잡한 속내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죠. 다만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거절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것도 다윗의 대견하고 깜찍한 생각을 하나님은 거절하시죠. 이게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나쁜 일이라면 '노!'하시는 것이 마땅하죠. 잘못된 일이라면 막으시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이건 나쁜 일도 잘못된 생각도 아닙니다. 오히려 주님을 위한 일이잖습니까?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억울할 때가 아마도 누군가를 위해 일하다 오히려 핀잔 듣고 불이익을 당할 때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마음에 선물을 했는데 그것을 거절당하면 화가 나죠. 더 나아가 열심히 하지 않고 빈둥거리다 잘못되는 것은 그나마 낫습니다. 진짜 열심히 했고, 최선을 다했는데,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했는데 일이 틀어지거나 잘못되면 그것보다 아프고 억울한 일이 없죠. 마치 버림받은 느낌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많은 이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경우를 듣죠. 나름 열심히 했고, 주님의 마음을 품으며 살았는데 앞 길이 어긋날 때 심한 절망감이 몰려옵니다. 저는 그들의 최선과 노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습니다. 원치 않는 결과가 그들의 잘못된 수고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늘 최선을 다하죠. 그 최선에는 어떤 기준이 있지 않습니다. 등을 떠밀지 않아도 강물은 흘러가듯이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수고를 업고 자랍니다. 하나님은 그 수고를 평가의 잣대로 삼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공덕이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열심히 살고,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치는 노력으로 그분의 응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분에게는 수락도 거절도 없으십니다. '예스'도 '노'도 없으시죠. 그분은 우리의 기도에 늘 응답하십니다. 잘했다고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응답이고, 틀어진 것을 교정하는 것도 응답입니다. 그렇게 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죠. 그뿐입니다. 그분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거절도 그분의 응답이시죠. 친구에게 혹은 사랑하는 연인에게 무엇인가 선물했다고 거절당해 보셨습니까? 속상하시죠? 자신이 애써 준비했는데 말이죠. 거절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그 거절은 자신의 취향을 말하는 응답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애써 준비한 선물인데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것을 받아서 장롱에 처박아 둔다면 그게 어찌 응답이겠습니까? 오히려 더 잘 어울리는 것을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더 귀한 것 아닐까요? 그런 거절은 분명히 응답입니다. 

 

거절도 응답입니다. 나의 생각을 교정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니까요. 자신의 생각과 뜻만이 옳다고 여기며 하는 기도는 대화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기도는 정해진 답만을 요구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거절은 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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