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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사무엘서묵상일기

사무엘서묵상일기149 - 경외입니까? 공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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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6:9~11   그날 다윗은 이 일 때문에 주님이 무서워서 "이래서야 내가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지 않고,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실어 가게 하였다. 그래서 주님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서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에 주님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 복을 내려 주셨다.


비가 오네요. 가물었던 대지를 적시는 비라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들다가도, 또 지나친 비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없을까 걱정되기도 하는 아침입니다. 똑같은 비를 놓고도 이렇게 두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 모순이기도 한데요. 우리에게는 그런 모순의 상황에서 어떤 마음에 더 집중하느냐? 가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내리는 빗줄기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어이없는 일이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습니다.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죠.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정말 난감하고 어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쩌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그 일을 총괄했던 다윗은 더했을 테죠. 과연 그는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의 궤에 대한 규례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잘못을 통감하며 자책의 마음을 가졌을까요? 아니면 달구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운반자에게 분노했을까요? 혹은 이런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좁은 해석에 대해 화가 났을까요? 우리가 독심술을 갖지 않은 한 다윗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의 현실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를 통해 어렴풋 느낄 수는 있겠죠. 잘하려고 했지만 어긋났을 때,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라고 자신의 길을 점검하며 다시 길을 걸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너무하신다고 투덜대며 책임을 하나님께 넘길까요? 다윗도 우리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윗은 이 일로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무서워진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이는 또 무슨 재앙을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일 거예요. 단순한 이 행동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웃사 사건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는데 누군들 인식하지 못한 작은(?) 실수로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죠. 보통 모든 이들이 두려움에 빠지면 재정비를 하며 다시 시작하기보다는 손을 놓는 경우들이 더 많죠. 

 

두려움에는 보통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존경이고, 또 하나는 공포입니다. 히브리어로 두려움이 [야레]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때론 '경외하다'라는 말로 번역되다가도, 때론 '무서움, 두려움'으로 번역되기도 하죠. '경외'란 존경과 동경을 갖는 두려움이고, 무서움이란 공포에 휩싸인 두려움입니다. 높은 산, 넓디넓은 바다, 그 광활한 대자연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내 손이 닿지 않는, 내가 할 수 없는 놀라운 힘에 대한 존경과 동경의 두려움이죠. 반면, 내가 해코지를 당할 것 같은 마음, 나를 못살게 굴 것 같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 앞에서의 두려움은 전혀 다른 것이죠. 과연 다윗의 두려움은 어떤 것일까요?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이에게는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달라요. 어떤 이에게는 나를 향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그 크고 거룩한 힘과 생각에 대한 존경의 두려움 앞에 자신을 내려놓는 신앙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에게는 해를 당하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눈밖에 나지는 않을까? 심지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까?를 고민하며 그 공포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복은 그 두려움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죠. 다윗은 그 공포로 인해 하나님의 궤를 붙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벳에돔은 그 하나님의 궤를 붙잡죠. 그가 자의인지, 강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에게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그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둔 것은 공포가 아닌 존경의 두려움 때문일 테죠. 경외의 두려움 위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이 보여줍니다. 공포의 두려움은 우리를 얼게 하지만 경외의 두려움은 믿음을 굳건히 하죠.  

 

내 앞에 놓은 현실이 두렵습니다. 어찌 무섭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아픈 상처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몰려오면 더욱 그 두려움은 커지죠. 그런데 그 두려움을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의 다음 행보가 결정됩니다. 아프고 슬프고 어려운 그 두려움을 이렇게 받아들이시면 어떨까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아브라함의 길도 인도하셨던 하나님, 끝까지 약속을 지키셨던 야곱의 하나님, 꿈을 현실로 만드셨던 요셉의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이죠. 그분의 크고 놀라운 일을 기억과 기대를 품고 두려움으로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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