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5:9~12 다윗은 그 산성을 점령하고 나서, 그 산성에 살면서, 그 이름을 '다윗 성'이라고 하였다. 그가 성을 쌓았는데, 밀로에서부터 안쪽으로 성을 쌓았다. 만군의 주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다.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단과 함께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어서, 다윗에게 궁궐을 지어 주게 하였다. 다윗은, 주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건히 세워 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번영하게 하시려고 자기의 나라를 높여 주신 것을, 깨달아 알았다.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면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시대를 엽니다. 그리고 그 산성의 이름을 다윗 성이라고 부르게 되죠. 시온이라는 이름의 뜻은 '요새', 혹은 '안전한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부스 사람들이 세운 산성이 시온산을 배경으로 지어서 그냥 시온 산성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요. 이 시온이라는 이름은 나중에 예루살렘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고, 더 나아가 지명의 이름보다는 민족의 이름처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가치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오늘 묵상의 본문은 짧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진출하여 이스라엘의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다윗의 모습을 그리고 있죠. 어쩌면 간단한 상황 설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다가 저는 이스라엘의 핵심 기초가 되는 철학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도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단초는 시온산성과 다윗성으로 이어집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시온의 뜻은 안전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지리적으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는 안전과 평화의 토대였죠. 그 시온의 정신 위에 다윗이 섭니다. 이 개명의 절차를 다음 구절에서는 이렇게 설명하죠.
삼하 5:10 만군의 주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대해졌다.
다윗이 더욱 강해지고 안전했던 이유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시고, 그분이 우리를 지키시며 돌보심을, 그리스도인들은 다 압니다. 또한 우리의 평안의 기초가 그분임도 알죠. 우리의 성공 열쇠는 그분과의 동행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죠.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따로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10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다고 되어 있죠. 맞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이시죠.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 우리와는 달리 하나님은 일편단심 우리에게 진심이십니다. 아마도 하나님의 관심밖에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다윗이 아니라 부족한 나도 그분의 관심을 받고, 그분은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강대해지는 느낌이 없어요. 분명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텐데, 나의 공덕과는 상관없이 나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실 텐데 나에게는 승리의 기쁨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오늘 본문 10절은 우리에게 있는데, 9절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고하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죠.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간구하고 바라고 원하지 않아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이죠. 그것이 10절이에요. 문제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드러내는 전제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주님의 자리로 나를 옮겨야 한다는 거죠. 마치 시온으로 나의 터전을 옮겨 다윗성을 짓듯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이 드러난 이유, 다윗이 강대해지는 것이 보였던 이유는, 다윗이 자신의 터전을 주님께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그래도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말하는 여호수아처럼 말이죠. 이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나를 믿음의 자리로 옮기지 않으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내 인생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본문을 9절과 10절을 붙여서 읽어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나의 터전을 주님의 자리로 옮기니 비로소 이전부터 나와 함께 하셨던 주님의 마음과 합하여 내가 강대해지더라"
내가 영접해야 주님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내가 반응해야 주님의 기적도 일어나고요. 내가 감사해야 주님의 은혜가 은혜로 남습니다. 마치 살도록 주신 공기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내가 호흡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듯이 말이죠.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굳은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으로, 불평과 불만족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내가 바뀌어야 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 10절이 주님의 일이라면 9절은 나의 일입니다. 주님께 바라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면 어떨까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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