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5:13~16 다윗은, 헤브론에서 떠나온 뒤에, 예루살렘에 와서 더 많은 후궁과 아내들을 맞아들여서, 또 자녀를 낳았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이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리아다와 엘리벨렛이다.
뜬금없이, 느닷없이 또 다윗의 아들들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미 3장에서도 맥락 없이 등장했던 다윗의 아들들 이야기가 있었죠. 정말 난데없는 본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다윗의 가정사를 적을 수는 있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대목에서 그의 개인적 이야기를 따로 담을 수도 있을 텐데 이 본문은 자리는 좀 생뚱맞아요. 그렇다고 연대기적인 구성도 아닙니다. 아들들을 한꺼번에 낳을 수도 없잖아요? 이왕 그의 족보를 다루거나, 가정사를 다루려면 따로 자리를 마련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터전을 닦는, 이야기의 전개로 보면 매우 중요한 스토리 전개의 자리에 갑자기 맥을 끊는듯한 본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저편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요. 3장에서도 그랬습니다. 이야기 전개상 아무 데나 복붙한 듯 다윗의 아들들 이야기가 등장했죠. 그런데 이 두 가지 다윗의 아들들 이야기가 등장하는 타이밍에 공통점이 있는 듯해요. 그것은 각기 다윗이 나라를 세워가는 초기 중요한 시점이었다는 것입니다. 3장은 유다의 왕으로서 자신의 왕권을 세워가는 단계에서 등장했고, 오늘 본문 또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터전을 닦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등장한다는 것이죠. 왜 유독 이때였을까요? 왜 뜬금없이 나의 기초가 세워지는 중요한 이야기 전개 중에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 다윗 아들들의 이름이 등장할까요?
저는 오늘 본문 한 구절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어요. 13절 말씀입니다.
삼하 5:13 다윗은, 헤브론에서 떠나온 뒤에, 예루살렘에 와서 더 많은 후궁과 아내들을 맞아들여서, 또 자녀를 낳았다.
이 본문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오는 단어가 있어요. '더'와 '또'입니다. 이 두 단어는 같은 말입니다. 히브리어의 [오드]라는 단어를 번역해 놓은 말이죠. 히브리어에서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는 것은 강조를 의미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조금은 한탄조의 반복으로 쓰인 것 같아요. 우리말로 "또또또..."라고 하며 혀를 차는 듯한 분위기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3장의 생뚱맞은 다윗 아들들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를 수긍케 만들죠. 이 '또'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아무튼 다윗은 잘 나가다가 꼭 같은 실수를 반복합니다.
아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것이 무슨 실수냐? 하실지도 모릅니다. 고대 왕국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는 방법 중에 하나로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많은 자식을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다윗의 이런 기록은 그리 큰 흠이 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윗의 권력이 그런 인간적인, 혹은 사회 전반적인 표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입니다. 그의 힘과 능력은 주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죠. 물론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의 친근함을 유지했던 인물입니다. 당장 오늘 다음의 이야기 장면에서도 전쟁 앞에서 하나님께 길을 묻고 구하는 다윗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다윗의 다른 모습이 표출되죠.
우리는 가끔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잘하다가, 잘 나가다가 하는 실수가 있어요. 그런 실수들이 어느 때는 열심히 쌓아 놓았던 공든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하죠. 많은 시간을 수고해서 만들어 놓은 일들이 짧은 실수로 인해 헛수고가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럴 때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치게 되죠. 그런 터무니없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런 실수는 의도되거나 혹은 하고자 해서 하는 실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실수이고, 또한 원치도 않는 실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실수에도 역사가 있습니다. 역사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실수는 없습니다. 다윗의 가장 치욕스럽고 또 지우고 싶은 실수는 다들 아실 거예요. 그 실수가 한순간에 나왔을까요? 그날 밤 한 순간의 욕정으로 일어났을까요? 천만에요. 다 깊은 역사가 있고, 쌓인 과거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같은 본문이죠. 아무렇지도 않게, 어쩌면 당연한 듯이, 누구나 하는 것이니까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행했던 일들이 나의 역사가 되어 나에게 결정적인 실수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버젓이 교회도 잘 나가고, 은혜의 나눔도, 인자한 모습으로 봉사도 잘 하지만 집에 와서는 습관적인 가정폭력을 일삼고, 직장에서는 인격적 차별과 경제적 속임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죠. 관례라는 미명 하에 말이죠. 그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으면 않을수록 우리에게는 더욱 치명적으로 쌓입니다.
내 속 사람의 소리가 들립니다.
"또또또 그런다..."
"잘하다가 왜 또 그래"
이런 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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