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중지되어있던 성전재건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뭐든지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려면 처음보다 더 힘이 듭니다. 우물물도 멈췄다 다시 하려면 마중물이 더 필요하고요. 자전거 페달도 멈췄다 다시 출발하려면 더 큰 힘이 필요하죠. 성전재건작업이 중단되자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성전 짓는 일이 중단되자 하나같이 자신들의 자리와 터전을 짓는데에만 힘을 썼습니다. 다시 모으기도 힘이 듭니다. 바벨론에서 귀환을 이끌었던 지도자 스룹바벨도 한번 돌아선 백성들의 마음을 다시 끌어 모으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다가 멈추면 우리의 열정만 꺾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은 훨씬 큰 영향을 받는데요. 우리 속에 하나님의 열정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탐욕이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쉽게 알 수 있죠. 경험이 많으니까요. 주일에 빠지기 시작하면 다시 나오기가 쉽지 않고요. 말씀묵상을 빠뜨리면 어느 세월에 묵상없는 삶이 이어지죠. 우리가 한번 영성을 빼앗기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분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언제든 나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의 과거나 잘못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넉넉히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분이 받아주실까 아닐까가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느냐 입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마음 먹어지는 것이 쉬울까요? 예를 들어 이런 말을 한번 해 보죠. 요즘 마약사건으로 시끄럽습니다. 어디서나 쉽게 마약을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그래서 호기심에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번쯤 피워 본다고 무슨 일이 생길라고?” “문제가 생기면 안 피면 되지!” “내 의지는 단단하다구!” 이미 이런 말이 만용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약을 멀리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누구도 막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 결심을 못한다는 거죠.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영성을 빼앗기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누구도 말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빼앗긴 영성으로는 하나님께 돌아갈 엄두를 낼 수가 없다는게 문제예요. 마약이 너무 우리의 삶과 먼 이야기라면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요? “하루 운동하지 않는다고 무슨 일이 생길라고?” 우리의 영성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무슨 드라마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도만 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찬양만 하면 감동이 일어나는 것이 신앙인줄 알죠. 그래서 그런 감동이 없으면 은혜도 없고 신앙도 아닌 줄 알아요. 우리교회처럼 밋밋한 예배, 무슨 드라마틱한 구성도 없는 이런 예배는 드린 것 같지도 않게 생각하죠. 만약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시다면 정말 뭘 모르시는 겁니다. 자꾸 운동과 연결시켜 죄송한데요. 그래도 가장 우리에게 접목되는 것이 운동이어서 그렇습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하면 반응들이 있어요. 팔다리가 아프고, 힘이 들죠. 힘이 들어도 그런 것이 근육이 생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죠. 그래서 신이 납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뭐든지 신기하고 새로운 일들이 생기죠. 그런데요.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면서 그런 일들은 점점 줄어듭니다. 이제 똑같은 시간을 운동해도 아프지도 않고 감각도 별로 없어요. 근육이 형성되는 것 같지도 않죠. 이런 시기가 분명히 옵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길죠. 그렇다고 거기서 멈추면 망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허사가 되죠. 왜냐하면 이제는 깊은 곳에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근육들이 만들어지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그래요. 처음의 열정을 지나면 이제는 조용한 시기가 오죠. 뭔가 보여지고 느껴지는 시기에서 이제는 내면의 깊은 변화들이 주어지는 시기가 옵니다. 마치 결혼생활도 그렇죠. 끓어오르는 신혼의 삶을 자꾸 그리워 하시는데요. 그렇게 결혼생활을 하면 모두 지쳐서 쓰러집니다. 그런 결혼 생활을 지나 이제는 안정되고 잔잔하며 깊은 믿음의 시기로 접어들죠. 그래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던 것을 계속해야 해요. 말씀묵상도, 예배도, 기도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별 특별하지 않아도, 어려움이 생기지 않아도, 충만한 느낌이 없어도 나의 기도와 예배, 말씀묵상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멈추면 돌아오기가 어려워요. 가장 쉬운 것은 늘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췄을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영적인 텐션을 지속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을 경우, 그래서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경우, 어떻게 돌아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죠.
성전 재건 작업이 멈추고, 뿔뿔이 흩어진 이들을 다시 끌어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영적인 침체에 빠진 그들이죠.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하나님은 학개와 스가랴를 붙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는 그들이 말씀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났다고 2절은 기록하죠. 영적인 침체에 빠진 우리들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말씀 뿐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깨우고, 말씀이 우리를 일으키는 것이라고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영적인 침체에 빠져 헤매고 있을 때 여러분에게 다가와 말씀으로 일으켜줄 동역자가 있습니까? 듣기 좋은 말 말고요. 어줍잖은 위로 말고요. 진심어린 주님의 말씀과 충고를 해 줄 동역자를 친구로 두고 계십니까? 내가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나에게 영적인 말씀을 전해줄 사역자를 곁에 두고 계신가요? 말씀을 가지고 권면하고 힘을 줄 친구가 있습니까? 스스로 위로하지 마시고, 진짜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연약하고 쓰러져 있을 때 주님의 말씀을 들고 찾아와 나를 깨워줄 친구를 곁에 두셨습니까? 우리는 친구들 많습니다. 직장 동료, 사업이나 취미, 꿈들을 나눌 친구들도 있죠. 슬픔을 함께할 친구도 있고, 어려운 일 당할 때 위로해 줄 친구도 있습니다. 우리의 목장이 그런 친구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말씀으로 내 가슴을 쳐주고, 새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울 친구는 있으신가요? 슬픔을 함께하고, 위로를 줄 친구들은 세상에도 많습니다. 우리 목장은 그 수준을 넘어 말씀을 나눌 가족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내가 영적 침체를 겪을 때, 낙심에 빠졌을 때 세상적인 위로를 전하는 그런 친구들 말고, 말씀으로 나를 일으켜 세울 동역자들을 세우시길 원합니다. 이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평상시에 그 관계를 잘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이죠. 평상시, 우리의 상태가 괜찮을 때, 아직 어려움에 빠지지 않았을 때, 그때 만들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말도 잘 안하고, 관계도 만들어 놓지 않았는데 어려움을 당했다고 갑자기 친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보기도 하겠죠. 그러나 나서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니 듣지 않을 것입니다. 평상시 신뢰를 만들지 않았는데 어찌 그 말씀이 들리겠어요. 평상시 귀를 열어두시기 바랍니다. 평상시 하나님의 언어를 익히시기 바래요. 평상시 여러분의 곁에 학개와 스가랴같은 이들을 친구로 두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고 말씀을 마무리하죠. 영적 침체에 빠지면 사람들이 일명 잠수를 탑니다. 예배에 나오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습니다. 물론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그래서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공동체는 달라요.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영적 침체에 빠지고 어둠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에 더욱 구조를 요청해야죠. 마치 여러분이 조난을 당하거나 물에 빠져 헤매일 때와 같을지도 모릅니다. 이때, ‘나의 상태가 안 좋으니 누군가가 나에게 오는 것을 막아야 해’ 이런 사람 있을까요? ‘내가 위험하니 다른 사람에게 보이면 안 돼’ ‘나 혼자 해결해야 해’ 이런 사람 있을까요? 아마도 백이면 백 모두 다 구조 신호를 보내고, 누군가가 왜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우리 교회 가족들 가운데서 많은 분들이 영적인 침체에 빠지고는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침체에 빠졌어요? 그러면 더욱 교회에 나와야죠. 더욱 영적인 친구들에게 구조를 요청해야죠. 더욱 도움을 구해야죠. 적극적으로 말을 들어야죠. 오늘 말씀을 들으시길 원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영적인 침체에 빠집니다. 누구나 가라앉아요. 어려움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지고, 어찌할 바 모를 상황이 오죠. 그때, 정말 잘해야 합니다. 그때, 나의 믿음이 필요해요. 그때, 숨지마세요. 그때, 귀를 여세요. 그때, 말씀으로 돌아가세요. 나에게 말씀으로 채워 줄 동역자를 만들고, 만나고, 함께 하세요.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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