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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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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묵상 116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과 순종뿐입니다. 예레미야 49:23-39 오늘은 고대 근동 여러 국가들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나열하면, 다마스쿠스, 게달, 하솔, 엘람 등입니다. 다마스쿠스는 다메섹이라고 알려진 현존하는 도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죠. 고대 수리아의 수도였고, 현재도 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이슬람 문명의 중심이기도 하죠. 이런 의미로 봐서는 자긍심이 굉장했을 것 같아요. 자신들이 이룬 문명과 지식들, 그리고 탄탄한 저력들이 그들의 자랑이었을 테죠. 그러나 그런 저력 또한 하나님을 떠나면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 이름입니다. 아마도 그 후손들이 이룬 민족이 살았던 곳이 아닐까 싶어요. 그들의 근거지가 특정되지는 않습니다. 유목민이었기 때문이죠. 그들이 성문도, 빗장도 없었다는 것은 뚜렷한 거주지가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
예레미야서묵상 115 - ‘너의 힘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 49:7-22 2020년 첫날이 밝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은 아직 밖이 좀 어둡네요. 이 글을 마칠 즈음에는 밝아지겠죠? 새해 아침에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올해도 주님의 도우심의 손길과 강복의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 삶의 자리에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에돔에 관한 말씀입니다. 에돔은 아시다시피 야곱의 형이자 이삭의 큰 아들이었던 에서의 다른 이름입니다. 어찌 보면 성경의 주인공이 될 뻔했지만 그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된 대표적인 인물들이 있지요. 아브라함의 첫아들 ‘이스마엘’과 에돔 족속의 시작이었던 ‘에서’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을지 모르는 이들이었죠.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과는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등을 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레미야서묵상 114 - 기분 내키는 대로 신앙생활 하지 마세요. 예레미야 49:1-6 2019년의 마지막에 섰습니다. 2019년을 살아낸 여러분들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각자에게 여러 가지 사건과 상황이 주어진 한 해였을 테죠. 그러나 그 수많은 문제를 뚫고 이 자리에 서신 여러분들을 축복합니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후회와 회한을 접고 감사와 은혜를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잘 견딘 자신을 축복했으면 좋겠고, 앞으로 주실 또 다른 시간을 기대했으면 좋겠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시간은 감사로 받으면 다 은혜입니다. 그러나 감사를 잊으면 그 은혜 또한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죠. 새롭게 주어질 시간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축복의 시간을 마련해 주시고, 은혜의 시간을 주실 것입니다. ..
예레미야서묵상 113 -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마세요. 예레미야 48:40-47 잠언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모압의 심판 예언에서 이 말씀을 떠올립니다. 남을 비판할 줄만 알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남의 티끌을 보면서 자신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이 교만이고요. 남을 향해 비웃으면서 자신도 똑같은 짓을 하는데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본래 그렇습니다. 자신이 하면 다 용서가 되고 남이 하면 다 죄가 되는 것이 교만의 기본이죠. 이중잣대가 그 핵심입니다. 다른 사람은 안 되고 나는 됩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입니다. 남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저주 때문이고,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억울한 것이죠. 모압의 교만이 그렇습니다. 결국 자신을 돌아보지 못..
예레미야서묵상 112 -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예레미야 48:26-39 모압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가 계속됩니다. 본문의 분량이 길지만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들이 심판에 이르게 된 이유는, 교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만이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이 계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이라고 되어 있네요. 그런데 오늘날 같은 때에는 이 교만의 범위가 아슬아슬합니다. 잘난 것을 잘났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자신의 실력을 오히려 드러내고 사용하고 평가받는 것이 더 자연스럽죠. 이런 모습을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겸손이라는 단어 또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죠. 자신의 진가,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감추는 것이 겸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력은 실력대로, 잘남은 잘남대로 드러나고 사용되고 쓰임 받지만, 그러..
예레미야서묵상 111 - 믿지 않는 이웃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48:1-25 오늘 말씀은 모압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46장부터 이웃 나라들에 대한 멸망의 선포가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이 말씀들이 조금은 듣기 거북하기도 하고, 또 지루하기도 합니다. 멸망에 대한 이야기보다 축복의 이야기가 더 듣기 좋기 때문이죠. 게다가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니 더욱 그래 보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기록된 그 나름의 이유가 다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해하기 힘든 말씀 앞에서는 더욱 나의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죠. 오늘도 겸손하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본문은 천천히 여러분 정독했습니다. 모압은 이스라엘과 한 뿌리의 민족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 가운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가 나오죠. 그들이 소돔과 고모라를 뒤로하고 빠져나..
예레미야서묵상 110 -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일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듣고도 행하지 않고, 보고도 따르지 않는 우리의 완악함 일지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47:1-7 오늘 본문은 블레셋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곧 블레셋입니다. 이스라엘과는 오늘날까지 원수처럼 사는 이웃 나라죠. 우리로 보면, 일본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국제정세도 당시 이스라엘과 무척 흡사한 것 같아요. 블레셋이 일본이라면 앗시리아는 중국이고, 바빌로니아는 미국쯤 되지 않을까요? 블레셋은 5개의 도시가 연합한 소위 연방국가였습니다. 아스돗, 가드,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이 그 도시들인데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한 후로부터 끊임없이 부딪치며 살았습니다. 블레셋에 대해 심판이 임하는 이유는 왤까요? 이 이유를 찾는 것이 아마 오늘 묵상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2가지 ..
예레미야서묵상 109 - 결국 모든 하나님의 말씀 끝에는 우리의 회복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46:13-28 메리 크리스마스! 거룩한 성탄절 아침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언제나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홀로 아름다운 것도 없습니다. 나누고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고, 말하고 듣는 분들이 계셔서 묵상도, 글도, 설교도, 축복도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제가 목사 되는 것이고, 여러분이 계셔서 또한 깨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이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오직 여러분 것이 되는, 특별하고 의미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의 연속입니다. 이집트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어지죠.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당신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다만 어제와 다른 것은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