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거룩한 성탄절 아침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언제나 일방적인 것은 없습니다. 홀로 아름다운 것도 없습니다. 나누고 함께 하는 분들이 계시고, 말하고 듣는 분들이 계셔서 묵상도, 글도, 설교도, 축복도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제가 목사 되는 것이고, 여러분이 계셔서 또한 깨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이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오직 여러분 것이 되는, 특별하고 의미 있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의 연속입니다. 이집트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어지죠.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당신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다만 어제와 다른 것은 시대적인 배경입니다. 어제는 갈그미스 전투, 그러니까 여호야김 시절을 배경으로 했다면 오늘은 시드기야 시절 바빌로니아의 이집트 침공이 그 배경입니다. 바빌로니아가 세운 왕 시드기야가 이집트에 붙자 바빌로니아는 남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내친김에 이집트 본토까지 밀어붙이죠. 예레미야가 이 사건에 대해 예언하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집트의 징계 이유는 어제의 묵상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생략합니다. 다만 오늘 본문 26절에는 이집트의 회복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후 27절에는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도 언급하죠. 마치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이런 전개가 조금 의아합니다. 징계하시려면 끝까지 하시고, 잘못한 사람은 씨를 말려야 잘못이 없어질 텐데 하나님은 마지막에 꼭 용서를 하십니다. 제가 신학 공부를 할 당시 구약을 가르치셨던 구덕관 교수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그분이 하나님을 한 마디로 이런 분이다라고 설명하셨는데 그게, 아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벌로 내쫓으시는 아버지가,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을 보고, ‘이번 한 번만 봐줄게’ 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하신 적이 있으신데요. 오늘 본문이 딱 그런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는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정의 실현? 그럴 수도 있고요. 하나님의 뜻대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저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목적이 다르게 읽힙니다. 바로 우리의 회복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우리 되게, 인간이 인간 되게, 그 참모습으로 회복되는 것, 창조의 목적대로 새로워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정의도 우리의 회복이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짐도 우리의 회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마저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우리처럼 오셔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회복, 죄로 물든 우리를 씻기시기 위해서 아닐까요? 어려운 말이 필요 없습니다. 기쁨을 잃고 비난과 염려와 걱정, 분노와 불만과 불평으로 휩싸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 아닐까요? 사랑과 협력의 창조 목적이 어느덧 싸움과 다툼, 시기와 갈등, 부정적이고 탐욕에 물든 우리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이키려 하신 것은 아닐까요? 결국 모든 하나님의 말씀 끝에는 우리의 회복이 있습니다. 그분이 사랑하시는 이유도, 징계하시는 이유도, 그분이 용서하시는 이유도, 아픔의 역사를 허락하시는 이유도, 모두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 아닐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우리의 회복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갈 명분과 길이 생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성탄은 ‘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 안에 오신 예수’ 여야 합니다. ‘나를 위해 오신 예수’ 여야 합니다. 오늘이 그 출발이 되길 빕니다. 나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신앙, 주님의 창조 목적대로 사는 삶, 나의 오리지널 디자인이 드러나는 인생, 나의 아름다운 내면을 결박하는 각종 더러운 옷들을 벗어버리고 진정으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아름다운 성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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