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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서묵상 110 -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일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듣고도 행하지 않고, 보고도 따르지 않는 우리의 완악함 일지도 모릅니다. 예레미야 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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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블레셋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말이 곧 블레셋입니다. 이스라엘과는 오늘날까지 원수처럼 사는 이웃 나라죠. 우리로 보면, 일본쯤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의 국제정세도 당시 이스라엘과 무척 흡사한 것 같아요. 블레셋이 일본이라면 앗시리아는 중국이고, 바빌로니아는 미국쯤 되지 않을까요? 블레셋은 5개의 도시가 연합한 소위 연방국가였습니다. 아스돗, 가드,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이 그 도시들인데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한 후로부터 끊임없이 부딪치며 살았습니다. 

블레셋에 대해 심판이 임하는 이유는 왤까요? 이 이유를 찾는 것이 아마 오늘 묵상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 2가지 이유를 찾았습니다. 하나는 성경에 근거한 이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저 개인적인 생각(뇌피셜)에 의한 이유입니다. 먼저 성경은 블레셋이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를 ‘자신의 힘을 믿는’ 것에 두고 있는 것 같아요. 5절에 보면 ‘아낙’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아낙 자손은 민수기에 보면, ‘힘이 세고 키가 큰 민족’으로 묘사되는 소위 거인족이었어요. 대표적인 인물이 골리앗입니다. 그는 블레셋의 장수로, 아낙 자손에 속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의 모습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의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과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습니다. 그것이 무기였죠.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믿는 것은 주먹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 쉽게 주먹으로 해결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자비하고 잔인할 수밖에 없었어요. 언제나 자신의 능력을 동원하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하나는 거인이고 하나는 작은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이기죠. 이를 두고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긴다는 의미로 우리는 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작고 큰 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것은, 하나는 큰 ‘자신’의 힘을 믿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큰 ‘하나님’의 힘을 믿은 것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아무튼 블레셋은 자신의 힘을 믿은 결과로 심판대 앞에 놓입니다. 우리 인간은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책임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죠. 그런데 그것이 내가 잘나고, 내가 잘해서 주어진 책임이 아닙니다. 나의 힘으로 그 책임을 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오직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받은 것입니다. 간혹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마치 자신이 잘해서 하고 있는 줄 알 때가 있어요. 내가 잘해서 이룬 일들이라고 믿죠. 그래서 하나님과 상관없이도 일이 되는 줄 알아요. 신앙은 떨어지고 믿음은 없어도 일은 합니다. 그리고도 일이 돌아가니 잘하는 줄 알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는 우리의 능력이 다스릴만한 힘이 있어서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럴만한 힘이 없어요. 다만 하나님께서 그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을 착각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내 힘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착각하는 것이 가장 큰 교만이라고요. 어제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지 않으셨나요? 내가 해서, 내가 만들어서, 내가 나와서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주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일이 되었지만 그 일을 이룬 근거가 ‘나’냐? 아니면 ‘하나님’이냐?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믿음이고 신앙입니다. 블레셋은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 근거한 블레셋의 심판 이유입니다.

미리 말씀드린 대로 이제는 제 개인적인 블레셋의 심판의 이유를 잠깐 나눠보죠.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임을 먼저 밝힙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늘 부딪치고 늘 아웅다웅합니다. 가깝기 때문이죠. 가족들이 더욱 많이 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마디로 이웃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서로를 너무 잘 압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아는 사이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여러 번 침공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칠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을 때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가장 약할 때 공격을 하는데요. 그때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는 때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것 같아요. 게다가 하나님의 법궤를 이스라엘로부터 빼앗아 자신의 신전에 가져다 놓은 적이 있습니다. 다윗 시대죠. 그것을 보면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핵심 전략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만 없으면 이스라엘이 힘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안 것이죠.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이스라엘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보다 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을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런데 왜 심판의 대상이 될까요? 문제는 알았는데 그들은 믿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았지만 자신을 바꾸지는 않았어요. 하나님의 심판 앞에 놓일 우리의 문제는 어쩌면 듣고도 행하지 않고, 보고도 따르지 않는 우리의 완악함 일지도 모릅니다. 아는데 실천하지 않고, 느끼는데 돌아서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그렇게 주변에서 말해주고, 권면하고, 애쓰는데 문을 닫아버리는 태도, 곁에서 사랑과 용서와 기다림과 참음으로 도와주는데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거부하고, 거절하는 태도, 그것이 주님의 심판 앞에 서는 이유가 될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우리 앞에는 많은 권면과 사랑의 메시지, 믿음의 선포들이 들릴지 모릅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그 메시지는 계속되겠죠. 그런데 얼마나 받아들이셨습니까? 얼마나 자신을 바꾸고, 실천하려고 하셨나요? 그저 읽은 것으로 지나치고, 그저 ‘그래야 할 텐데…’라고 중얼거리고 끝낸 적은 얼마나 많았나요? 그것이 지속되면 우리는 듣고도 행하지 않는 외식하는 자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넘치는 하루이길 빕니다. 작은 순종이 나를 거룩하고 아름답게 만듭니다. 오늘도 주님께 가까이 가는 하루가 되시길 깊이 기도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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