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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에스라서묵상

[에스라묵상11]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면 고생합니다.(스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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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즘에는 컴퓨터가 일상화 되어서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는 컴퓨터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전제품의 일부가 되었지요.
그러나 초창기 컴퓨터는 다루기 부담스러운 그런 물건이었습니다.
사실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컴퓨터가 보급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소위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인데 그때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는 없었습니다.
레포트를 컴퓨터로 작성한다는 것은 꿈에도 못꾸었고, 조금 된다하는 사람은 타자기, 더 된다하는 사람은 워드프로세서라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물론 이 워드프로세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라 타자기의 일종이었는데 아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겁니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그 연수를 제대로 다 못하고 단명한 제품이었으니까요.
개인용컴퓨터라는 것이 개발된 것은 70년대 중반으로, 그 유명한 스티브잡스의 애플컴퓨터였습니다.
그러나 상당히 고가여서 대중화하지 못하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OS개발로 IBM 컴퓨터가 상용화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컴퓨터가 이렇게 생활화된 것은 채 30년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얼리어댑터를 자부하는 저도 컴퓨터를 처음 만져본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난 80년대 말이었습니다.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여 주보를 만들던 제게 어떤 교사께서 학교에 보급되는 컴퓨터를 구해 주셨습니다.
덩치는 남산만하고 하드디스크는 아예 없으며 플로피 디스크도 5.25인치짜리를 탑재(?)한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기계치라는 소리는 듣지 않는 저이지만 그 거대함과 위압감에 눌려 컴퓨터를 애지중지해야만 했던 시절입니다.
게다가 설치기사님의 말이 컴퓨터가 고장날 수 있으니 조심이 다루라는 엄명도 있던터라...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컴퓨터에 달리지도 않는 플로피디스크가 요즘 젊은이들은 보지도 않았을 크기나 얇기가 책받침 같은 야리야리한 것이었으니... 또 왠 주의사항은 그렇게 많은지... 켜기 전에 해야 할 일, 끄기 전에 해야할 일... 아뭏든 이건 사람을 도울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도와주어야할 물건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물건을 알현하고는 맞이한 첫번째 에피소드...
그렇게 설치를 마치고, 무슨 성경책 두께의 절반정도 되는 설명서를 주고 갔는데 읽을 염두가 나지 않아 팽겨치고는 혼자 컴퓨터를 키려고 파워버튼을 눌렀는데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뭐가 잘못되었나 설명서를 뒤져보고, 이리저리 해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고, 머리에는 "잘못 다루면 망가진다"는 설치기사의 말만 맴돌고... 드디어 비싼 컴퓨터 설치 하루만에 해먹었구나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엄습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설치기사를 다시 불렀습니다.
가사님이 오셔서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한번 보시고는 금새 전원을 켜 주었습니다.
고장 이유를 물어보는 나에게 그 기사님의 한마디...
"전원을 꽂으셔야죠..."   

2.
최근에 미국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개신교 교회 중 하나인 수정교회가 카톨릭재단에 팔렸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로버트 슐러라는 유명한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인데다 수십만개의 유리로 만들어진 교회로 유명한 이 교회가 재정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는 팔린 것입니다.
요 며칠 사이 이 문제를 보도하는 기사를 살펴보면 한때 수만의 교인이 모이던, 미국을 선도하던 교회가 이렇게 몰락(?)하게 된 이유를 분석한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요지는 로버트 슐러목사님의 은퇴 후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한 것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문제는 한국교회에서도 문제화되는 것이기에 기사는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교회의 문제가 단지 세습에 있었을까요?
제가 목사 아들이기에 이 문제를 두둔하거나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저는 세습과는 관계없는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이런 몰락을 세습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를 똑바로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과연 영적으로 온전하게 주님 앞에 서 있고, 언제나 겸손히 주님 앞에 기도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자신의 사욕보다 주님의 사명에 헌신하는 목회자가 세습이라고 다 몰락할까요?
문제는 세습이 아니라 영적 중심의 문제입니다.

3.
우리는 근본적 문제를 잘 알아야 온전한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여러가지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해서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의 근본적인 문제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잃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70년을 지난 지금 성전을 재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스라엘 왕들의 잘못이고, 외세의 잘못입니다.
이렇게 항변할 수도 있습니다.
"왕들이 죄악의 길로 가는데 지도자가 아닌 내가 어떻게 올바른 길로 가느냐?"
"저 악한 이방민족들만 아니었어도 우리는 나라르 빼앗기지 않았을거야..."

언제나 우리는 이렇게 상황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지극히 표면적인 것만을 바라볼려고 합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나의 어두운 문제를 자기 스스로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스라엘 백성의 태도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11절)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12절)

4.
근본적인 문제를 보고 해결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한 생각과 올바른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게 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십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이방 왕 다리오가 이스라엘을 위해 일하게 되는 것은 그의 인격이나 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면 우리는 고생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볼 수 있는 지혜는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대면할 수 있는 용기는 풍랑 속에서 잔잔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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