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묵상일기 129 -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2024. 10. 11. 04:45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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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24~26   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매일 아침 좋은 아침을 노래하는 것은 마냥 추임새가 아닙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을 만들겠다는 다짐이죠. 날씨가 어떻든, 세계정세가 어떻든, 심지어 기분이 상하여 아파도, 그래도 새롭게 주신 아침을 맞이하는 이 시간, 주님의 선물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이 시간을 축복합니다. 묵상에 앞서 먼저 마음을 돌이키세요. 어제의 기분에 오늘을 맡기지 마시고요. 외부적 상황에 방해받지 마시고, 새롭게 출발하는 오늘 되길 빕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서의 팔복을 닮았다고 말씀드렸죠? 어쩌면 소스는 같을지 모릅니다. 다만 마태와 달리 누가는 8가지 복을 다 적지 않고 있죠. 아마도 예수님은 8가지의 복을 말씀하셨을 것 같습니다. 마태는 그것을 다 기록한 것이고요. 그런데 누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8가지가 아닌 4가지만 적고 있죠. 잘못 들은 것인지 취재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누락이 된 것만은 사실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어렴풋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본문에서 마태복음서와 다른 것은 비단 복의 축소만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5장에는 없는 '화'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점이 다르죠. 이 부분 또한 예수께서 분명히 전하신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마태가 누락한 것이 되죠.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는 이 본문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마태는 복을 받는 것에 집중한 반면, 누가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 복을 받는 것과 동시에 나눌 줄 모르고 끼리끼리 노는 이들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누가는 8가지를 채우고 있는 거죠.

 

본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부요한 자, 배 부른 자, 지금 웃는 자,  좋게 말하는 자들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이죠. 이는 해설이 좀 필요합니다. 부요하다는 것은 부자를 의미하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부자는 죄인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죠.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부자가 화를 입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이 말씀은 간단히 말해 장차 받을 미래의 축복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소위 탕자의 비유라는 말씀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을 달라고 해서 미리 받아 떠났죠.

 

우리에게 주어진 부는 축복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주님의 축복을 누리는 도구일 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나에게 주어진 재물은 나를 통해 주님의 도우심을 전하는 손길이기 때문입니다. 복의 통로가 되는 거죠. 우리의 재능이 그렇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이지만 그 재능은 남들을 이롭고 유익하게 하는 데 쓰이죠. 그렇게 하늘의 상급을 쌓고 사는 것이 진짜 축복인 것입니다.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 그다음 등장하는 배 부른 자입니다. 

 

동화나 만화에 보면 부패한 권력자나 이기심 많은 부자를 표현할 때 주로 쓰이는 캐릭터가 터질듯한 배를 가지고 양손에 고기를 들고 개걸스레 먹는 장면이죠. 남과 함께 나누지 않는 재물은 쉬이 사라집니다. 나를 통해 맡기신 자들과 함께하지 않는 재물은 점점 가치를 잃어요. 웃는다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 좋자고 하는 일들, 나만 웃자고 남을 울리는 행동, 더 나아가 아첨하고 거짓 증언을 하고, 권력자 앞에 꼬리를 흔드는 행동을 하는 이들은, 지금은 다 얻은 것 같고, 지금은 자신이 이기는 것 같아도 끝내는 화가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예수님은 준엄하게 하고 계십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면 하늘에는 상급이 쌓입니다. 곁에 배고프고 소외되고 아픔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는 삶을 산다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도우시는 역사가 일어나고요. 이웃과 더불어 웃고 울 수 있다면 성령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의 위로와 평강이 되어 주실 겁니다. 한 가지 더, 인생을 너무 좋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마세요. 아부하는 사람, 그냥 나 좋다고 하는 사람만 곁에 두지 마세요. 나에게 언제나 길라잡이가 되어 줄 사람을 곁에 두세요. 그것이 이 묵상이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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