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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누가복음서묵상일기

누가복음서묵상일기 128 - 가치는 역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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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20~21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너희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너희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너희 지금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다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온 이 시간을 축복합니다. 잘 쉬었으니 또 기쁜 마음으로 다시 일상을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죠. 주일 공동체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그 예배의 자리를 떠나는 순간이라고요. 왜냐하면 주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나누려 떠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와 감격으로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오늘 이 아침이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좋은 기분을, 나의 좋은 마음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 떠나는 기대에 찬 아침이길 말이죠. 그 발걸음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말씀과 같습니다. 산상수훈 가운데서도 팔복으로 알려진 말씀과 유사하죠. 그렇다고 똑같지는 않아요. 마태복음은 8가지의 복을 말씀하지만 여기서는 4가지 복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미니 팔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팔복의 말씀은 유명해서 다들 아실 줄 압니다. 그렇다고 그 의미와 숨겨진 메시지를 다 알 수는 없죠. 많은 신학적 개념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문학적 표현이 집약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이 본문은 마태복음 5장을 묵상할 때 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요. 오늘은 조금 포괄적인 시선으로 이 말씀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가난한 자, 굶주린 자, 슬피 우는 자가 등장합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도 소외된 자를 나타내고 있죠. 아마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벗어나고 싶은 것이 이 세 가지일지도 모릅니다. 가난의 비참함, 굶주림의 두려움, 억울함과 아픔과 상처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이 있다고 단언하십니다. 이게 좀 믿어지지 않습니다. 가난한 것이 복이라고요? 굶주리고 억울한 것이 복이라고요? 나와 상관없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멋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진짜 가난에 시달리고 굶주림의 공포를 겪어 본 사람은 이 말씀이 오히려 약 올리는 것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가난과 굶주림, 상처는 지금도 우리를 위협하는 현실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예수님은 굳이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일단 여기에는 몇 가지 복선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가장 먼저 우리의 인생이 이 문제들로부터 자유롭기가 어렵다는 것을 전제하신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마주할 현실적인 문제가 바로 이 문제들이라는 뜻이죠. 조금 더 폭을 좁혀서 말하면, 예수님은 오늘 제자들을 보시며 이 말씀을 하셨다고 되어 있는데요. 이는 앞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될 제자들을 국한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길이 가난과 굶주림, 사회적 소외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의 중요한 메시지는 가난이나 굶주림이 아닙니다. 그것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선물로 주어진다면 그 가난이 바로 복이 아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굶주린 자들이 배부르게 된다면 그 굶주렸던 현실이 감사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지금은 슬피 울지 몰라도 곧 웃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는 그 시간은 가치로울 것입니다. 마치 내일의 자유를 위하여 오늘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서 다시금 우리 공동체가 올해 계속적으로 믿음의 기초를 다지며 되뇌는 슬로건이 있죠.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다. 그러니 이를 믿는 사람은 지금 가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지금 굶주림과 상처, 억울함과 소외를 피하기 위해 꼼수와 걱정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이죠. 

 

가치는 역전됩니다. 지금은 부유가 가치인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가난이 나에게 가장 큰 가치였음을 깨달을 때가 찾아옵니다. 지금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참된 가치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져주고 남을 낫게 여긴 것이 참된 가치로 나에게 복을 주는 때가 와요. 굳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참된 가치는 하나님뿐입니다. 그분이 계신 곳이 가치고 그분이 임하신 곳이 가치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우리 공동체 가족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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