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7:20~22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였다. "제가 진실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저지른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전리품 가운데에서, 시날에서 만든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이 나가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이 나서 가졌습니다. 보십시오, 그 물건들을 저의 장막 안 땅 속에 감추어 두었는데, 은을 맨 밑에 두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사람들을 그리로 보냈다. 그들이 장막으로 달려가 보니, 물건이 그 장막 안에 감추어져 있고, 은이 그 밑에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법 초겨울을 맛보는 한 주였습니다. 짐짓 코끝을 때리는 찬 바람이 상쾌하기도 하고 공기는 마치 가슴을 정화라도 하듯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우리의 몸은 겨울을 받아들이며 적응해 나가겠죠? 몸처럼 우리의 마음도 주어진 환경을 잘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죠. 그러나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어떤 상황이 와도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그 문제들을 잘 받아들이고 해결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이럴 때 이 말씀을 써야 하죠.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오늘은 아간의 자백이 등장합니다. 이미 말씀드렸죠? 이 자백은 회개가 아니라 자술라고요. 고해성사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실토라고 말입니다. 그가 도둑질 한 물건은 외투 한 벌과 은과 금이라고 합니다. 뭐 고작 외투 한 벌일까 싶지만 성경은 이 외투를 설명할 때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있죠. 그러니까 정말 잘 만든 옷이라는 뜻이죠. 게다가 시날이라는 곳에서 만들었다고 그 옷의 제조국을 표시합니다. 시날은 바벨론, 그러니까 현재는 이라크 지역을 말하죠. 지금은 그저 중동의 그저 그런 한 국가처럼 보이지만 그곳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흐르는 세계 최초의 문명이라고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요즘 옷 하면 어느 나라 브랜드가 가장 좋은가요? 패션의 고향 이탈리아인가요? 프랑스인가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이 옷은 메이든 인 이탈리아, 그리고 최고급 브랜드의 옷이 틀림없습니다.
도둑질하는데 은과 금이 빠질 수는 없죠. 옷이 어떤 명예와 관련된 욕심이었다면 은과 금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은과 금을 훔칠 때 은을 훨씬 많이 훔친 것이 눈길이 갑니다. 은은 200세겔, 금은 50세겔을 훔치죠. 재미있게도 우리는 이것이 오늘날 얼마나 값어치를 할까에 유독 관심이 가죠? 그래서 제가 계산해 보았습니다. 1 세겔이 약 12g 정도 하거든요. 그렇게 계산하니 은값이 우리 돈으로 250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한탕 도둑질 하기에는 조금 약소하죠? 아간이 간이 작았을까요? 그러면 금값은 어떨까요? 오늘 기준 50세겔의 금값은 4,700만 원 정도더라고요. 큰돈이죠. 그러면 금을 더 많이 훔칠 텐데 왜 은을 더 많이 훔쳤을까요? 그것은 당시의 금과 은의 가치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금보다 은이 더 값어치가 있었기 때문이죠. 은은 화폐용도로도 사용되었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은이 먼저 나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는 '금과 은'이라는 표현보다 '은과 금'이라는 표현이 더 많죠. 다 이 때문이죠. 오늘 본문에 보면 은을 제일 밑에 두었다는 표현이 두 번씩이나 나오죠. 아마도 은이 가장 값어치가 있었을 거예요.
너무 잡다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아무튼 아간의 사건은 우리 안에 있는 탐욕에 대해 서술하고 있음에 틀림없죠.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돈이 많아서 떵떵거리고 싶은 욕심이 우리 안에 다 있으니까요. 아간은 그 아름다운 옷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아름다운 옷을 태운다고? 이 고급진 옷을? 아깝게? 차라리 내가 잘 입으면 그것이 더 이로운 것 아닌가? 그게 환경보호에도 더 좋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 합리화를 하다 보니 점점 돈에도 손을 대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의 범죄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등장하는 내용이죠. 사탄의 유혹에 인간 또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눈이 밝아진다고? 그럼 좋은 거 아닌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된다고? 그럼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거니 좋지 않나?'
그런 모습은 아간의 자백에도 담겨있죠. 그가 외투와 은금을 '보고' '탐이 나서' '가져갔다'는 표현은 마치 에덴동산 현장에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까지' 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남의 것은 그저 남의 것입니다. 그것이 내 것은 아니에요. 남의 자리는 그저 남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내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남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 수 없듯이 말이죠.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계획하시고 만드신 나의 인생이 있습니다. 나에게 주시는 아름다운 옷이 있고, 나에게 주시는 재물도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것입니다. 남의 것에 눈독을 들이지 말고 나의 것을 찾는 편이 훨씬 빠릅니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기보다 나에게 주신 것을 구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죠.
남의 옷을 다 불태워도 내가 입을 옷은 있습니다. 남의 재물이 다 사라져도 나에게 허락된 재물은 반드시 있습니다. 남의 것을 다 버려도 나에게 주어질 은혜와 축복은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 나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남을 시기하기보다, 남의 것을 탐내기보다, 남을 부러워하기보다, 나를 위해 예비하시고, 나를 위해 계획하신, 나만의 것을, 나만의 은혜를, 나만의 시간과 복을 기대하고 찾는 우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고 사라져도 나를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내 주변의 재물이 차고 넘쳐도 주님이 주시는 나의 재물보다 값질 수는 없어요.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것만이 세상 어느 것보다 나에게 가장 값진 것이기 때문이죠.
오늘도 시간은 나에게 주신 주님의 복입니다. 남의 시간을 탐내지 말고 나의 시간을 사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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