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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05 - 오늘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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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1:7   오직 너는 크게 용기를 내어, 나의 종 모세가 너에게 지시한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여라. 그러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특별히 오늘이 좋은 것은 오늘이 9월의 첫날이고, 가을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매일이 첫날이고 새로운 날이죠. 우리는 매일 새로 태어납니다. 매일 처음 사는 시간이죠. 그런데 간혹 우리는 그 새로운 날을 잊을 때가 있죠. 마치 어제 산 날처럼 여길 때도 있고요.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낡은 날로 여길 때가 많죠. 그래서 우리는 매일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오늘처럼 가을을 시작하는 귀한 날, 9월의 첫날, 이렇게 말이죠. 생일이 뭐 대수입니까? 똑같은 날이죠. 그런데 생일은 특별하잖아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죠. 오늘도 우리는 이렇게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특별히 주신 날, 더위에 지친 나에게 선선한 바람과 가을의 향기를 주신 날, 인생에 가장 새롭고 아름다운 날,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며 시작하는 오늘은 우리에게 특별한 날이 될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당신이 하실 일을 먼저 말씀하셨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십니다. 어제 그 첫 번째 가르침을 묵상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굳세고 용감해야 한다고 하셨죠. 믿음의 근본은 굳세고 용감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굳건해질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바로 믿을 때입니다. 누군가를 믿고, 무언가를 믿을 때 우리는 강건해지죠. 또 우리가 용감해지는 때는 언제일까요? 사랑할 때가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우리는 용감해지죠. 어쩌면 믿음의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첫 번째 태도는 굳세고 용감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용기를 바탕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시죠. 그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입니다. 사실 오늘 말씀을 읽을 때 눈에 익숙한 문장이 보이셨을 거예요.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 그 문장이죠. 개역개정성경대로 읽는 것이 더 익숙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더 익숙한 이유는 우리의 필요 때문이죠. 우리는 늘 선택의 문제에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이것일까? 저것일까? 고민하게 되죠. 마치 결정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어떤 것이 더 좋은 선택인지를 따지는데 우리는 익숙해 있습니다. 지혜를 말할 때 이 선택의 의미가 가장 우선시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게다가 흑백논리와 이념적 대립이 강한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죠. 그래서 이 말씀이 교회에서 많이 회자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중심 되는 문장은 '우로나 좌로나'가 아닙니다. 그 이전에 있는 문장인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라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우로나 좌로나'의 문장은 이를 더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죠. 그럼에도 '우로나 좌로나'가 더 부각된 이유는 우리말 성경의 번역 때문입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키고'와 '우로나 좌로나' 사이에는 '그것으로부터'라는 단어가 있는데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어 있는 거죠. 이를 원문의 문맥을 살려 저의 개인적인 의견을 담아 의역하자면 이렇게 되죠.

 

"너는 용기를 내어 내가 말한 율법을 지켜라.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수많은 일들이 너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너는 율법을 용기 내어 지켜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나의 은혜와 축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의 '좌로나 우로나'는 어떤 특정한 길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생각과 길을 걷지 못하도록 흔드는 것들을 이겨내라는 말씀인 거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생각, 그분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이 불안 아닐까요? '이게 아니면 어쩌나?' '다른 사람들은 다 큰길을 가는데 나만 좁은 길 가면 될까?' '이렇게 다르게 살아도 되나?'와 같이 수많은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불안이 바로 좌로나 우로나 아닐까요? 어느 때는 저 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어느 때는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은 그 불안함,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고백해도 돌아서면 또다시 몰려오는 걱정과 염려들이 우리의 좌우에 넘쳐나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용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용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죠. 용감하게 홍해에 발을 디뎌야 할 때가 있죠. 용감하게 갈바를 알지 못하고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처음 사는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꿈을 펼쳐야 합니다. 내 자식이 어떤 인물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보여지는 것으로 그의 인생을 판단할 수 없죠. 그러려면 부모에게 용기가 필요하죠. 지금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줄 알아야 하고, 내 자녀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인생을 바꾸실 주님의 계획이 언제 이루어 질지를 인내를 가지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망치는 대부분의 이유는 이 용기 없음에 지금 할 말을 다 쏟아내고 자식의 인생을 내 인생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욕심 때문이죠. 이 욕심은 다 불안에서 나오는 태도이고 용기 없는 행동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른 것 다 제쳐두고 여호수아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한 가지 말씀만 떠올려 보시죠. 

 

여호수아서 1:5   내가 모세와 함께 하였던 것과 같이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겠다.

 

이 말씀을 여러분은 믿으시나요? 우리 주님이 그런 분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용기를 내세요. 주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은 망하지 않습니다. 용감하게 걸으세요. 주님이 함께하시는 길은 설혹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실 줄 믿어요. 

 

오늘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나의 어떤 잘못에도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요. 주님은 결코 나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그 말씀을 믿고 오늘도 즐겁고 기쁘게,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얻은 이들처럼 담대하고 당당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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