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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10 - 순종은 상하기 쉬운 음식과도 같아서 즉각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금방 상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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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1:10~11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진을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알리시오. 양식을 예비하고, 지금부터 사흘 안에 우리가 이 요단 강을 건너, 주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소유하게 될 땅으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시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맑은 가을하늘처럼 우리의 마음이 푸르고 맑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우리의 기분이 넉넉하고 여유롭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도 상큼한 가을향기처럼 우리의 감정 또한 웃음꽃이 피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에 나섭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명령하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말이죠.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 가까운 길이 있었습니다. 거리상으로 보아 걸어서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에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는데요. 그것은 지중해를 왼쪽에 끼고 가는 해안도로죠. 그러나 이들은 어떤 연유로 해서 지금의 시나이 반도 광야를 40년간 헤맸습니다. 그리고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이르죠. 그곳은 현재 이스라엘의 최남단에 있는 곳입니다. 아시다시피 그곳에서 정탐꾼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때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지름길을 피하게 되죠. 소위 족장의 대로라고 불리던 브엘세바 - 헤브론 - 예루살렘을 잇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우회하게 되죠. 이 때문에 또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선택한 길은 예부터 상인들이 주로 다니던 요단강 동쪽의 길이죠. 무역의 길이어서 그런지 이를 왕의 대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죠. 그러나 그러면 뭐 합니까? 결국은 가나안을 피해서 돌고 돌아가는 우회길일 뿐이죠.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자꾸 미뤄요.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죠. 결국 피하고, 돌고, 미루고 미루다 기회를 놓치고 은혜를 누리지 못하죠. 오늘 본문은 그렇게 미루고 피하고 돌고 돌아 요르단 중부 요단강 동쪽 모압평야에 이르러서 여호수아의 명령이 떨어지죠.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된 이후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의 말씀과 믿음의 당부를 하신 직후였죠.

 

저는 여호수아가 모세보다 더 뛰어난 지도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가진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현재까지 중동지역에서 하나같이 거의 유일하게 인정받는 지도자가 모세죠. 그러나 모세와 여호수아에게서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한 가지입니다. 즉각적인 순정이죠. 모세는 주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늘 순종했죠. 그러나 그 순종에는 사연이 좀 있습니다. 늘 이유가 달렸고, 늘 어려움이 있었죠. 그래서 그의 순종은 조금씩 늦습니다. 그래서 여러 시련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순종에 무슨 시간이 필요할까 싶어요. 결국 순종하는 삶은 같은 결과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순종을 미루면 우리에게는 짊어져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집니다. 더 많은 공격에 노출되고 더 깊은 믿음의 경험들을 요구하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안에 벌어지는 합리화와 싸워야 하고, 미루면 미룰수록 우리의 눈을 현혹시키는 일들이 주위에 펼쳐집니다. 유일한 가능성이 순간 다른 수많은 대안들로 덮이죠. 그래서 차선의 차선을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에야 처음으로 돌아오는 경우를 우리는 성경에서 수없이 봅니다. 

 

여호수아는 약점이 많은 인물입니다. 담대하지도 용감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수없이 두려워 말라고 주님이 말씀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소극적이었던 것 같고요. 우유부단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인간적인 인물이죠. 그런데 그에게 가장 큰 장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그 한 가지를 보시고 그를 사용하고 계신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은 바로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오늘 본문도 주님이 말씀하시자마자 그는 즉각적으로 행동합니다. 달리 여러 상황을 계산하지도 않죠. 어쩌면 그런 즉각적인 행동이 가장 용감한 행동인지도 모릅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즉각적인 순종이 무슨 막무가내식의 결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죠. 기도할 때나 묵상할 때, 혹은 말씀을 들을 때나 목장에서 서로 말씀을 나눌 때 주시는 마음들 말이죠. 그런데 그것을 조금만 미루면 우리 안에 그 생각과 마음, 결단과는 다른 수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몰려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느 때는 더 좋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하죠.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일에 교회 공동체에서 모이는 것이 하나의 약속이 되었습니다. 그 모임은 나의 시간과 정성의 십일조를 드리는 하나의 믿음의 표현이죠. 그런데 그렇게 주일 아침 교회에 나오려다 싸워요. 마음이 상하고 다칩니다. 그러면 주님과의 약속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죠. 이런 생각이에요. '이런 마음으로는 예배드릴 수 없지' '차라리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보여드리지 않는 것이 낫다' 이게 참 좋은 생각 같죠? 그런데 이런 생각은 못하죠. 내가 죄인이어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연약하고 회복이 필요해서 지금 나는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죠. 

 

순종은 그저 순종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어요. 주님이 말씀하시면 즉각적으로 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용감한 거예요. 내게 말씀하신 것을 미루지 마세요. 내게 주신 마음을 회피하지 마세요. 순종은 상하기 쉬운 음식입니다. 그래서 즉각적으로 처리해야 하죠. 여호수아의 가장 큰 위대함, 주님이 바라시는 가장 큰 용기, 바로 즉각적인 순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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