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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여호수아서묵상

여호수아서묵상일기 06 - 보이지 않는 나의 일상을 만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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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서 1:8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9월을 맞이한 첫 주말을 잘 지내셨나요? 마치 지난 먼지들을 다 털고 새로이 깨끗한 마음으로 출발하길 원하는 듯 가을비로 시작한 9월이 상쾌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 주신 새로운 하루를 기쁘게 출발하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계시죠. 믿음은 용감한 것이고,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의 다짐이 아닙니다. 무슨 인내심이나 담대한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 용감함과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는 말씀에 기초합니다. 끝까지 우리와 함께할 것이고, 어떤 일이 있어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며, 우리를 쉽게 떠날 만큼 약하지도, 유한하지도 않으시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믿음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바로 그 약속이에요. 

 

오늘은 믿음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곧잘 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만큼 도전이 많기 때문이죠.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아픔이 몰려올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를 의심하게 되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아무도 겪지 않는 경험을 할 때,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믿음은 흔들리죠. 

 

이것이 악순환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방법대로 일하시죠. 때론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미 주일 공동체예배를 통해 말씀을 나눴듯이 우리의 흑백논리로 인해 하나님의 응답과 일하심을 YES, 혹은 NO로만 구분하다 보니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더욱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어느 때는 기다림을 통해 주시는 은혜들을 우리가 놓치죠.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그 위에 일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빛을 발할 때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때, 나의 예상과 빗나갈 때, 혹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일지도 몰라요. 그때 믿음을 더욱 동원해야 하죠. 그래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벗어나면 우리 안에는 더욱 충만한 흑백논리가 동원되고,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되며, 특별히 고약한 독심술로 가득 차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죠.

 

우스갯소리입니다만 제가 어린 시절 교회에서는 부흥회가 성행하였는데요. 그때 그런 말이 많이 돌았어요. 부흥강사님들이 믿음은 덮어놓고 믿는 거라고요. 무조건 믿어라 이런 말을 많이 하셨죠. 그 말을 들으면 마치 무슨 사이비 같고 비 이성적인 소리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요즘은 그런 말 안 하죠? 저도 이런 터무니없는 말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어딨어? 알고 믿어야지" 그랬거든요. 죄송합니다만 요즘은 제가 늙은 것인지 철이 든 것인지 이 말이 이해가 됩니다. 믿는다는 것이 결국 무조건 믿는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떠올라요. 어디 우리가 알고 믿습니까? 알면 또 더 알아야 하고, 이해하면 더 이해를 요구하는 식으로 우리의 믿음은 계속 뒷전이 될 때가 많죠. 오해하지는 마세요. 무슨 믿음을 강압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믿음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믿음이고, 나의 생각을 벗어나도 믿음이어야 합니다. 나의 길과 달라도 믿음이고, 나의 뜻과 달라도 믿음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죠.

 

그 믿음을 지키는 우리의 유일한 훈련 방법이 오늘 본문에 제시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여기서 우리는 또 가슴이 턱 막힙니다. 공부라면 진절머리를 치는 우리이기 때문이죠. 공부하지 않으려고 나이 먹는다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또 공부라니 이거 처음부터 힘든 마음이 가득하죠. 그런데 안심하세요. '공부'라고 번역된 원어 히브리어 [하가 הָגָה]는 '한번 더 생각하다' '깊이 묵상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성경에는 이를 '주야로 묵상하다'라고 번역해 놓았죠. 그런데 새 번역에는 왜 공부라는 부담스러운 단어를 사용했느냐 하면, 이 단어가 단순히 생각만으로 그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의 의역을 가미해서 말하자면 삶에 적용하는 생각이라고 할까요? 우리의 실제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의미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은 구절에 '실천하라'는 말이 쓰인 거죠. 

 

이는 성경공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 그분이 우리를 대하시는 마음과 창조의 능력을 우리가 되새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그분이 결국에는 나를 도우시고 이끄신다는, 나의 생각과 시간과는 달라도, 그분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평상시 늘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알고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죠. 이것은 우리가 늘 그 생각에 젖어 있어야 합니다. 늘 가까이 있고 늘 곁에 있어야 우리의 몸에 배이잖아요. 평상시 어떤 생각을 하느냐, 평상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나의 삶이 되는 거죠. 늘 보고, 늘 말하고, 늘 느끼고, 늘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공부인지 우리는 몸으로 이미 압니다. 믿음은 갑자기 생기지 않아요. 또한 믿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죠. 비록 보이지 않아도 어느 순간 드러나는 믿음은, 우리가 평상시 늘 보고, 말하고, 듣고, 생각하며 그저 나의 일상이 되었을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현듯 어느 순간 커다란 능력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는 거죠. 

 

습관적이어도 괜찮습니다. 그냥 관습적이어도 괜찮아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어도 좋습니다. 마치 나의 삶처럼, 그냥 지나치는 일상처럼 기도하고, 생각하고, 행동해도 괜찮아요. 식사기도 그거 뭐 생각도 나지 않는 기도일 때가 많잖아요? 무슨 기도했는지도 모르는 눈만 감았다 뜨는 행동일 때도 있죠.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런 모든 것이 나의 삶의 일부가 되고, 자연스레 말씀과 관련된 일들이 우리 주위를 둘러싸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믿음이 내 안에 만들어지고 있는 거죠. 뭐 대단하게 소리치고 울부짖고 희생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도 모르게 어느덧 너무도 당연하게 찬양이 들리고, 말씀이 들리고, 좋은 생각을 나누고, 주어진 말씀을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우리의 믿음은 자라니까요.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작은 습관을 유지하세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나의 일상을 만드세요. 마치 운동이 나의 일상이 되는 것처럼... 그러면 어느덧 나의 몸이 건강해지고, 그러면 어느덧 하는 일이 순조로워지고, 그러면 어느덧 나는 주님의 길을 걷고 있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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