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2. 07:03ㆍ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6:5~8 나는 마케도니아를 거쳐서 여러분에게로 가겠습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를 지나서 여러분에게로 가면, 얼마 동안은 함께 지낼 것이고, 어쩌면 겨울을 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다음에 여러분은,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나는,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서 여러분을 만나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얼마 동안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에어컨 없이 견디기 힘든 날들입니다. 특별히 냉방병 조심하시고 찬 음식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시원한 조절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이 조절이 중요하죠. 다급함과 초조함에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단번에 끝내려는 욕심이 우리의 길을 잃게 만드는지도 몰라요. 조금씩, 천천히, 한 걸음씩 생각하며 길을 걷는 오늘이길 빕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여행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방문 계획을 밝히는 것은 흔한 일이죠. 언제 보러 갈 거라고 예고하는 것은 인사이기도 하고, 또한 미리 계획을 알리는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얼마 정도 머무를지 그 기간을 밝혀, 함께 할 때에 서로의 일정도 조율하도록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르죠. 바울은 마케도니아를 거쳐 고린도로 가고자 했습니다. 마케도니아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당시 세웠던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는 지역이었죠. 그리고 고린도 교회에서는 겨울을 나기로 했습니다. 비교적 오랜 시간을 고린도 교회와 함께 하는 셈이죠. 이는 고린도 교회에 대한 애착과 사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만큼 흔들리는 고린도 교회였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들은 문란한 사생활과 우상숭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이는 단순한 사회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교리적인 문제와 겹친 일이었기에 더욱 심각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영과 육을 분리하는 교리를 전파하는 이들에게서 비롯된 일이었기에 혼란은 가중되었던 것이죠.
본문에 대한 내용은 위와 같습니다. 바울의 여행 계획을 알리는 것이 전부죠. 이런 본문을 대하면, 읽고 이해하는 것 이상의 묵상을 나누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이전에는 제가 이런 본문을 대할 때, 사실관계 이외 덜 중요한 본문으로 여겨 묵상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말씀이 제가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하고 있을까?"
누군가 잘못된 교리에 현혹되어 있거나 다른 사상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나쁜 생각에 몰두하고 부정적이고 불평의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이웃을 향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누군가 아픔을 당하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지쳐서 힘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고린도 교회의 아픔과 고통에 편지를 쓰고 기도하며 달려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바울을 보며 저는 공동체 정신을 떠올렸습니다. 나의 가족과 같은 사람, 나의 피붙이처럼, 나의 형제처럼 함께 울고, 함께 웃기를 소망하는 바울의 공동체 정신과 사랑이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만든다는 사실을 떠올렸어요. 그의 학식이나 어떤 대단한 재능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웃을 가족처럼 대하는 사랑이 그의 진정한 능력이었다고 말이죠.
나의 능력은 나와 다른 이들을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랑입니다. 이를 공동체 정신이라고 하죠. 하나님은 서로 다른 우리를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모습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가진 것이 달라도, 심지어 인종과 언어, 피부색과 종교, 사상이 달라도 우리는 주님 안에서 똑같은 피조물인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공동체 정신이죠. 이것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자의 근본입니다. 이 때문에 서로 사랑이라는 계명이 있고, 이 때문에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누려야 하는 당위성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죠.
참 사람을 믿기 힘든 시절입니다. 의심과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경험들을 가진 세대죠.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이겨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내 피붙이가 아프면 같이 아프듯, 내 가족이 고통을 당하면 함께 고통당하듯, 우리는 그 공동체 정신으로 이웃과 함께 하며 기도하고 함께 울고 웃어야 하죠. 경험은 경험이고 사명은 사명입니다. 내가 당했다고 사명이 거짓이 되거나 가치 없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대학이 소용없는 것이 되지 않듯이, 사람에 대한 상처가 이웃 사랑을 거부할 명분이 되지도 못하죠.
우리의 성장은 가족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나에서 내 가족, 내 가족에서 내 이웃, 그리고 전 세계가 나의 형제자매임을 인식하는 것이 선교를 지상명령으로 받은 이유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할 명분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주위에 가족이 많다는 것은 귀찮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고 또 할 일도 많아지죠. 그러나 또 다른 이에게는 자신에게 다양한 지원군들이 많아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함께 기도해 줄 사람이 많아지고, 어려울 때 도울 손길들이 많아지며,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기회가 많아지는 것일지도 몰라요. 은혜가 그렇습니다. 감사로 받으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되고, 기쁨으로 받으면 모든 일이 복이 되죠.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들은 나에게 주신 거룩한 동역자들입니다. 나를 돕도록 보내신 선물이에요. 그들을 돕는 일도, 그들을 섬기는 일도, 모두가 나를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언젠가 반드시 헛되지 않고 은혜와 복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니 공동체 안에서 사세요. 자신의 가족들을 더 넓히세요. 공동체의 범위를 더 확대하세요. 그만큼 주신 선물들이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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