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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고린도전서묵상

고린도전서 130 - 작고 남루한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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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10~11   디모데가 그리로 가거든, 아무 두려움 없이 여러분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를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가 내게로 돌아올 때에, 그를 평안한 마음을 지니게 해서 보내 주십시오. 나는 형제들과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참 예쁘더라고요. 가끔 하늘을 보며 푸르른 하늘에서 시원한 헤엄을 치는 상상도 하면서 무더위를 날리는 기분을 가져보시면 어떨까 싶네요. 여전히 덥지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시원케 하는 믿음으로 가득하길 빕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죠. 영적인 아들이라고까지 불리는 디모데를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미리 보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디모데는 바울과 거의 동시에 출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 발쯤 앞서갔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디모데가 출발한 후 바울은 여행 계획을 다소 수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디모데를 따라 바로 고린도 지역으로 가지 못한 것이죠. 그리고 대신해서 이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가 먼저 간 것은 그가 다른 곳을 들러 가야 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죠. 그래서 이 편지가 디모데보다 먼저 도착할 것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바울이 작은 염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죠. 그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여기서 몇 가지 추측할만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만큼 고린도 교회 내 파벌과 분쟁이 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도 공격을 받을 정도이니 디모데야 어떻겠습니까? 또 디모데의 나이가 어린 측면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죠. 사도도 아니고, 어떤 직분자도 아닌 데다가 나이도 어리니 무시할 수 있다는 걱정이 든 것으로 보이죠. 그러면서 그도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가나안 농군학교라는 곳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1962년, 김용기 장로님이라는 분이 "한 손에는 성서를, 한 손에는 괭이를"이라는 신념으로 한국전쟁 이후 무너졌던 나라를 되살리고 의식을 개혁하는 운동을 주도했던 곳이었습니다. 조만식 선생의 민족 자립 경제 운동의 시초였던 물산 장려 운동과 함께, 민간주도 의식 개혁의 토대가 되었던 가나안 농군학교의 의식개혁 운동은 이후 새마을운동의 기초적 배경을 제공할 만큼 큰 영향을 주었죠. 그 김용기 장로님이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 상을 수상할 때였습니다. 시상식이 열리는 장소에 장로님이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난 일화가 있다고 하죠. 그 행색이 너무 남루하고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고무신에 삼베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그의 수상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간혹 우리는 보이는 것만으로 누군가를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때론 어제의 모습으로 평가를 할 때가 있죠. 그런데 사람은 자랍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사는 사람이 분명히 있고, 보이는 것 속에 보이지 않는 영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입었는지, 무엇을 먹는지,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그 사람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숨 쉬는 사람이라는 자체에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생명이 바로 하나님의 생령이기 때문이죠.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있고, 그분의 영이 생동합니다. 비록 지금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 그 영은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 것이고, 또 피어날 것임을 믿는 것이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죠. 작고 남루한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줄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모습이고, 약하고 힘없는 자를 실족케 하지 않는 것이 이웃 사랑의 근본입니다.

 

오늘 누가 작은 자로, 어린아이로, 연약하고 남루한 자로 나에게 올까요? 그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할 여유와 사랑이 있는 하루를 사는 공동체 가족들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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