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9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주시고,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는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더라고요. 오늘도 새벽 공기는 서늘합니다. 그래도 낮은 어제처럼 청명하다네요. 옷을 잘 입고 출근하셔야 할 듯합니다. 어제 드디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었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죠. 오늘도 여러분의 일상이 회복한 하루이기를 빕니다.
어제 지혜와 지식에 이어 오늘은 믿음이 등장합니다. 믿음이 은사라는 것이 조금 낯설죠. 왜냐하면 믿음은 신앙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죠. 가장 기초적인 것이니까요. 그런데 바울은 믿음이 은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고 보면 똑같은 성경을 읽고도 받아들이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있죠. 말씀을 듣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는 믿어지는 데 전혀 믿어지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이들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듯이 그들의 불신도 말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를 보면 분명 믿음도 은사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단 저는 주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그분의 생각과 계획에 동의가 되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게 믿음의 은사를 주신 것에 깊이 감사해요. 그 은사가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주님을 알지 못했을 것이니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가 깨달아서 믿은 것은 아니에요. 내가 똑똑해서 말씀이 이해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잘나서 말씀이 믿어지는 것도 아니죠.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자리 잡은 것은 전적으로 주신 은사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에 대한 한 가지 우리의 자세를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을 자꾸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죠. 소위 '라떼는 말이야'인데요. 예전에 부흥회를 인도하는 목사님들이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무조건 믿어라' '덮어놓고 믿어라' '따지지 말고 믿어라'
이게 참 황당하죠. 반 이성적인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제 마음에도 이런 주장에 반감이 생기곤 했습니다. 마치 그런 말씀을 하는 목사님들이 좀 무식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졌단 그때의 모습을 회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그분들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의도야 어떻든 믿음은 은사이지 논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믿어지는 것, 마음에 끌리고 손을 내밀게 되는 것, 어느 순간 매달리고 찾게 되는 그것은 나에게 주신 은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하죠.
입맛이 발달한 사람이 있죠? 먹어보면 간이 맞는지 맛이 있는지, 심지어 어떤 종류의 재료가 들어갔는지 장금이같이 아는 사람이 있죠. 게다가 무엇을 넣어야 맛이 더 나아지고 어떤 재료를 써야 풍미가 더한 지 알아보죠. 그게 참 신기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알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늘 한결같죠. 그냥 먹어보면 안다고 하죠. 그 말이 참 허망합니다. 나는 먹어봐도 알 수가 없으니까요. 그것을 왜 그런지, 어떻게 그런지, 혀의 구조는 어떤지 따지지 않죠. 그냥 주신 재능이기에 감사할 뿐이잖아요. 받아들이고 감사하고 잘 누리면 되죠.
내게 믿음이 있다면 먼저 감사하세요. 내가 주님 앞에 엎드리고 그분의 권위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그런 마음을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따지지 마세요. 그저 감사하세요. 로마서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하신 일, 그분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들을 우리 안에 주셨다고 했죠.
로마서 1:19 하나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믿음의 은사를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 은사로 주어져 있으니까요. 믿어지는 것을 마치 무식한 것, 반 이성적이고 비 논리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마세요. 그런 이성과 논리가 있어야 믿음이라는 생각은 내려놓으세요. 믿음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재능처럼 은사로 주셨으니까요. 당연히 믿어지고 당연히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은 순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은 본래 논리적이지 않아요. 은사니까요. 믿음을 가지고 논쟁하지 마세요. 믿음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까요. 다만 여러분 안에 주신 은사를 썩히지는 마세요. 은사는 사용해야 제 빛을 냅니다. 은사는 사용할 때 더 커지죠. 믿음은 우리에게 주신 재능이자 선물입니다. 그러니 마음껏 쓰세요. 내 믿음의 분량이 내 안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분량을 결정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를 사용할 때 하나님이 도우시듯 내 믿음을 동원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 안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선물로 주신 이유죠. 그러니 그 선물을 잘 사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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