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발명가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토머스 에디슨을 꼽을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총 1,033개의 발명품을 남긴 인물이죠.
그가 발명한 전구나 축음기, 전기 발전기 등은
인류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만큼 위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발명의 천재일 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도 영향력을 발휘했는데요.
자신의 발명품을 팔기 위해 세운 회사가 있습니다.
바로, GE(제네럴 일렉트릭)이죠.
이 회사는 지난 100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회사였습니다.
백색가전 제품이라고 하죠.
우리 일반 가정에서 쓰는 냉장고,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을 통칭하는 말인데요.
GE의 가전제품이 모두 백색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만큼 가전제품 하면 GE가 떠오를 만큼 유명한 회사였죠.
가전뿐 아니라 금융, 항공, 운송 등의 다양한 사업으로
전 세계 175개국, 30만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는
거대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작년,
미국의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다우지수에서 퇴출을 당했습니다.
다우지수에서는 주기적으로 불량한 회사들을 퇴출시키는데요.
GE가 그 속에 속한 것이죠.
한때, GE는 혁신적 회사의 대명사였습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당시,
위기 속에서도 새로운 경영 트렌드를 만들어 내며
경영의 교과서로 불리던 기업이었죠.
당시 회장을 지낸 잭 월치는
전설적인 경영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몰락에 대한 연구들이 일었습니다.
무리한 사업확장과
미래의 트렌드를 분석하지 못한 것들이 원인으로 뽑혔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분석은,
경직된 리더십이었죠.
근거 없는 낙관론에 사로잡혀 있었고,
조언이나 쓴소리를 싫어하는 경영진들의 리더십이
몰락의 중심에 있었다는 겁니다.
최고 경영진들은 회사의 나쁜 뉴스를 듣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늘 좋은 뉴스만이 올라갔다고 하죠.
직언이 어려웠고,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오로지 성공한 사례만을 내세워
기업의 풍토를 “성공극장(success theatre)”이라고 비아냥대는
풍자가 난무했다고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협박에 가까운 경고들이 나열되어 있죠.
읽다 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말을 듣는 당시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 해답은 10절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렘6:10 “제가 말하고 경고한들 누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그들은 귀가 막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면 그들은 저를 비웃기만 합니다. 말씀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탄식인데요.
그렇게 경고를 듣고도 이스라엘의 반응은 딱 이것입니다.
물론, 이 반응이 오늘 우리의 반응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만 마치 이 말들은 저 먼 옛날
이스라엘을 향했던 말씀이라고 치부하며
혀만 끌끌 차고 있는 내 모습이 바로 이 모습이죠.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국 보험회사의 손실통제부에서 일하던 하인리히는
1931년 책 하나를 출간했는데요.
거기에는 산업재해에 대한 통계 분석이 실렸습니다.
산업재해로 사망자 1명이 나오는 데에는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중상자가 29명이 발생했고,
그 이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가벼운 부상자가 300명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300명이나 다치는 사람이 나올 동안 그 위험성을 무시하면
조금 더 크게 다치는 사람이 29명이나 나오고,
그동안에도 무시하면 사망자가 나오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보통,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불리죠.
300번이나 주어진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29명의 중상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테죠.
29번이나 난 큰 사고에 대해 조금 더 철저히 반응했더라면
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은 발생하지 않았겠죠.
“큰 실수는 굵은 밧줄처럼 여러 겹의 섬유로 만들어진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한 말입니다.
단 한순간의 몰락은 없어요.
여러 차례 돌이킬 경고가 있고,
위험신호가 주어지죠.
그런 수많은 경고가 무시당하다가 몰락을 맞는 것입니다.
경고가 있는 이유는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혜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경고를 들을 줄 아는 것입니다.
쓴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것이죠.
물론 쓴소리, 듣기 힘듭니다.
그러나 쓴소리를 듣는 아픔이,
다가올 아픔보다는 훨씬 덜 아플 거예요.
작은 아픔으로 큰 아픔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지혜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지금은 마음뿐이지만 이 아픔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면,
나중에는 마음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건질 수 있다고요.
작은 경고를 하찮게 보지 마세요.
작은 책망을 무시하지 마세요.
작을 때 들으세요.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놓치지 마세요.
‘설마’하고 비웃지 마세요.
늘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여러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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