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사람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하는 어휘가 있습니다.
특별히 어리석은 사람들에 관한 표현이죠.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가 없는 백성’입니다.
오늘 본문도 어리석은 백성들을 향한 말이 계속되는데요.
바로 이 말로 시작하죠.
이 표현은 성경에서 곧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43:8 백성을 법정으로 데리고 나오너라. 눈이 있어도 눈이 먼 자요, 귀가 있어도 귀가 먹은 자다!
시편에도, 에스겔서에도,
어리석은 백성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예수님도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마가복음의 기록입니다.
막8: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께서 위의 말씀을 하신 배경을 좀 살펴보면,
어떤 모습이 그런 모습인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마가복음 8장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데 이어,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천 명을 먹이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소위 칠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르죠.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이 서로 다른 사건인지,
혹은 한 사건이지만 다르게 전승되었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두 사건이 동일한 사건이라고 이해합니다만,
마가복음은 이 두 사건을 다 기록하고 있죠.
그 사건이 있고 난 이후,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죠.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누룩이란, 발효제의 일종으로 술이나 빵 등을 숙성시키는 효모균입니다.
쉽게 말하면 곰팡이죠.
성숙해야 할 곳에서는 좋은 역할을 하지만
다른 의미로 보면 과장되고 부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누룩을 후자의 의미로 사용하고 계시죠.
특별히 바리새인과 헤롯이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그들에게 있는 부풀려진 욕망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눈앞의 증거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늘의 표증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적, 표증, 표적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반면, 헤롯의 누룩이란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삶들을 반증하죠.
재물과 권력을 얻으면 그것이 곧 축복이라는 식의 모습 일테죠.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모와 외형에만 집착하고, 부와 명예만이 복이라는 식의 신앙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이 사뭇 재미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룩을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은 빵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 배 안에 빵이 하나밖에 없음을 알게 되죠.
여러 아이가 과자 하나를 놓고 싸울 때가 있죠.
어른이 되면 싸우지는 않지만 눈치는 봅니다.
맛있으면 맛있을수록,
소량이면 소량일수록 그 눈치는 더욱 치열해지죠.
마치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가서 물 먹고 오는 식이죠.
이를 두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 자유롭습니다.
마치 연(鳶)이 줄에 묶여 있어야,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꿈꿉니다.
자유가, 하나님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생각하죠.
자신만의 삶, 자신만의 기준, 스스로 왕이 되는 것이,
자유인 줄 압니다.
너무 좁은 시각의 비유입니다만,
이런 비유를 들어보죠.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좋은 직장이에요.
첫날, 회사 최고 책임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자유롭게 능력을 펼치십시오.’
그랬더니 그다음 날부터 회사엘 안 나갑니다.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오고 싶을 때 옵니다.
회사의 규칙이나 규율 따윈 필요 없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는 거죠.
실제로 이런 광고 있지 않았습니까?
신입사원에게 회장님이 이렇게 말하죠.
“내 회사다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그랬더니 신입사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정말요? 그럼 회장님 오늘부로 해고!”
이런 식인 거죠.
모든 물건에는 사용설명서가 붙어 있습니다.
그 물건이 가장 효과적이고 제대로 쓰이려면,
그 설명서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 설명서와 달리 사용한다면 고장이 날지도 모르죠.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지으셨고,
그분의 방법대로 만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그분 안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죠.
그분의 손에 잡혀있을 때가 가장 큰 자유이고요.
그분의 뜻에 따라 살 때가 가장 큰 기쁨이죠.
이것을 잃으면,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거둬야
비로소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벗어나야
비로소 하늘의 소리가 들리죠.
주님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주님 뜻에 묶일 때 가장 자유하고요.
주님 편에 설 때 가장 행복합니다.
그때, 눈이 뜨이고, 귀가 들리기 때문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아침은 좀 흐리네요.
그래도 주님이 주신 하루입니다.
여러분에게 맡기신 하루죠.
이 하루도 주님께 묶인 삶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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