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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는말씀/예레미야묵상

예레미야묵상17- 오늘도 샬롬하세요. 예레미야 6: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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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영성예배에서는 에베소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까지, 몇 차례에 걸쳐 전신갑주에 대한 말씀을 나눴어요.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할 방법들에 대한 말씀들입니다.
그것은 총 6가지인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1. 진리이신 하나님을 모든 것의 기준 삼아라
2. 공의와 정의를 가슴에 품어라
3.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마음의 평강을 잃지 말라.
4. 믿음이라는 방패로 온갖 공격들을 막아라.
5. 끝끝내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라.
6. 내 입술이 아닌 주님의 입술이 돼라.

이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검에 비유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5가지는 모두 방어적 무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영적인 무장에 있어서, 내적 무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쉽게 말하면,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저는 지난주 수요일에 “멘탈’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신앙은 멘탈게임인지도 모릅니다.
오해는 마세요.
신앙을 무슨 심리적 안정과 같은 단순한 정신의학적 분석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은 분명히 하나님이라는 존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내 내면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믿음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멘탈게임이라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실제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멘탈을 강화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가령,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웁니다.
그때 엄마가 와서 아이를 안아줘요.
그러면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편안히 잠이 들죠.
아이가 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불안정하다는 의미잖아요.
그런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어요.
다만 엄마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이 달라졌을 뿐이죠.
엄마가 특별히 무엇을 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 마음속에 엄마의 존재만이 각인될 뿐인데요.
그것이 실제로 아이를 평안하게 하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되신다는 사실은
내 삶에서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입니다.
내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나를 이해하고, 도우시며, 완전하고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은,
나의 삶을 뿌리서부터 바꿀만한 사건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부모의 존재 자체가 아이들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처럼 말이죠.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아이는,
학교생활도 달라진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죠.

이 말씀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샬롬’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샬롬]은 우리나라의 ‘안녕’과 같은 이스라엘의 인사말입니다.
굳이 뜻으로 말하면, “평화”라는 뜻이죠.
이 [샬롬]이라는 말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멘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은 [샬롬]하죠.
나를 지켜주는 분이 계시다는 것에 안심하게 되니까요.
그분이 창조주라면 더욱 그렇죠.
진정으로 주님을 안다면 멘탈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하겠죠.

오늘 본문에서도 이 [샬롬]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14절입니다.
렘6:14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여기서 ‘괜찮다 괜찮다’라고 번역된 말이 [샬롬]입니다.
그런데 이 [샬롬]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였어요.
지금 상처를 입고 곪아 터지는데,
샬롬 샬롬 한다고 진짜 샬롬한 것이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이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죠?
제 아버지는 오랫동안 병상에 계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부터였으니까 족히 20년은 넘는 기간이네요.
그동안 병원에서 생활하신 기간만 해도 5~6년은 되는 것 같아요.
한번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제가 간호를 하게 되었는데요.
병원에 계실 때는 거의 말도 못 하시고 정신이 없는 경우가 많으셨어요.
간호하는 데 있어서 제일 어려운 점이
욕창이 생기는 것이었는데요.
누워 계시니까 늘 씻겨드리고, 몸을 이동하게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아픈 분보다 더했겠습니까?
늘 괴로움에 인상도 찌푸리고, 소리도 지르고 하셨는데요.
제가 해 드릴 것이 거의 없어서 그게 더 마음 아프기도 했습니다.
고작 한다는 것이 곁에서 다독여 드리는 것뿐이었으니까요.
어느 날, 괴로움에 몸을 뒤척이시면서 신음을 뱉고 계실 때
제가 아버지를 안정시키려고 다독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괜찮아요…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아요…”
그랬더니 말을 못 하시던 아버지가 자그마한 소리로 말씀 하시더라고요.
“난 안 괜찮아…”
저는 그 대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의 위로가 얼마나 허망하고, 이해 못 하는 위로였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죠.

[샬롬]은 밖에서 오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부터 오는 거예요.
아무리 겉으로 괜찮다고 해도 [샬롬]은 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포장하고, 이것저것으로 덧칠을 해도 [샬롬]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샬롬]은 내 마음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로부터 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으면 불안한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임을 믿으시나요?
또한 그가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결국 푸른 풀밭과 시원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비록 상했을지라도 꺾지 않으시는 분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불안해하십니까?
왜 멘탈은 늘 흔들리세요?

오늘도 샬롬하세요.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비록 안타까운 모습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경고를 하시면서
끝까지 설득하고 계시는 그분이 나의 하나님임을 믿고,
오늘도 샬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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