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8:3~8 여호수아가 군인들을 다 동원하여, 아이 성으로 쳐 올라갔다. 여호수아는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을 틈타 보내면서,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성 뒤로 가서, 성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매복하고, 모두들 공격할 준비를 갖추어라. 나와 함께 있는 모든 군인은 그 성으로 접근하겠다. 아이 성 사람들이 우리와 싸우려고 나오면, 우리는 지난번과 같이 뒤돌아서 도망칠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뒤쫓고, 우리는 그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낼 것이다. 그들은 도망하는 우리를 보고서, 자기들끼리, 지난번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거든, 너희는 매복하고 있던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을 점령하여라. 주 너희 하나님이 그 성을 너희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성을 점령하거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서 그 성을 불태워라. 내가 너희에게 내린 명령이니, 명심하여라."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아시죠? 우리에게 유쾌하고 즐겁고 기쁘고 감사한 하루를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요. 상황이나 환경도 우리에게 그런 기분과 감정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 권세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악한 세상에서도 보배롭게 살도록, 수많은 유혹가운데서도 존귀하게 살도록 주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 된 권세를 주셨죠. 그래서 우리는 운명에 끌려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운명을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오늘도 밝은 미소와 힘찬 구호로 시작해 보세요.
"좋은 아침"
동물의 왕국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약육강식의 밀립이 펼쳐집니다. 밀립의 왕자는 단연코 사자죠. 느릿느릿하다가도 사냥을 할 때면 신속하고 강하게 사냥감을 노립니다. 이런 말이 있죠. "사자는 토끼 한 마리를 잡더라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 말입니다. 강력한 신체적 힘은 다른 동물들을 압도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거기다 전력까지 다하면 약한 존재들은 남아날 재간이 없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기에 사냥에 나선 사자들은 자신이 점찍은 사냥감을 다 잡을 듯 보여도 사실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30%를 넘지 못한다더군요. 그것도 두세 마리가 협동을 해서 사냥을 할 경우고, 만약 혼자 사냥을 나선다면 확률은 20%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고 하더라고요. 밀립에서 당할 자 없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 사자의 사냥성공률이 이렇게 낮은 건 의외죠?
이런 결과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마도 그 첫 번째 이유를 꼽는다면 '스타일' 때문이겠죠. 사자는 보통 단시간에 폭발적인 스피드와 힘을 발휘합니다. 평소에는 어슬렁거리다가도 순간적으로 상대방을 단번에 제압하죠. 그러다 보니 조금만 시간이 지체되고 길어지면 쉽게 지쳐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그러면 쉽게 포기한다는 거예요. 자신에게는 믿을만한 힘이 있으니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기 때문이죠. 굳이 힘을 다 소진해 가며 매달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냥 성공확률은 떨어지는 거라더군요.
그런데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도 전력을 다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전력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움직일 때만 유용한 거죠. 자신이 생각한 시간 안에 끝나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힘이 미치는 한에서만 계산되죠. 만약 생각대로 시간 안에 끝나지 못하거나, 믿었던 자신의 힘을 넘어서면 온 힘을 다 쏟아붓는 일은 다음으로 미뤄집니다.
이에 반해서 사자에게 쫓기는 동물들은 다음을 기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죠.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자에게 쫓기는 동물들은 '전력(全力)'이 아니라 '사력(死力)'을 다합니다. 죽을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것이죠. 필사적인 존재에게는 자신이 가진 힘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정말 모든 것을 쏟아붓다 보니 초인적인 힘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힘들까지 쓰는 거죠. 그러니 전력을 다하는 사자가 자기 생각대로 사냥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아이성을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립니다.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모든 것을 동원해야 하죠. 이번에는 여유를 부를 처지가 아니죠. 전술전략은 이전보다 훨씬 촘촘하고 세세합니다. 유인과 매복, 그리고 기습의 전략을 세우는 등 만전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아이 성을 기어코 함락시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최선을 다했더니 이겼다.'일까요? 만약 그랬다면 오늘 이 본문이 그리 길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본문이 있는 8장은 계속해서 동어반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여호수아가 또 말하고, 이제는 그것을 실행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마치 재탕, 삼탕을 하듯 똑같이 반복되어서 나오죠. 왜 그리 똑같은 말을 계속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이미 아이 성을 이스라엘 손에 넘기셨습니다. 아이 성은 이제 이스라엘 것입니다. 싸움은 이미 승패가 정해졌어요.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최선을 다합니다. 마치 사자가 토끼를 잡듯이 말이죠. 그런 메시지라면 저는 한번 반복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묵상이지만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읽다 보니 최선을 다하는 이스라엘이 최선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력'이죠. 그들은 지금 사력을 다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싸움은 최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강해서 이기는 것도 아니죠. 아무리 힘이 세고 강해도, 아무리 할 수 있는 힘을 다해도 우리는 이 땅에서 영적인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다 써도 말입니다. 오직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죽을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나의 힘을 넘어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력을 다할 때 나의 힘을 뛰어넘는 기적의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죠.
기억하세요.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군사적으로 강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바라지도 않으시죠. 그러나 주님을 믿는 그의 군사는 사력을 다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것이 강력함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은 사력을 다하는 이들에게 임하시는 능력이니까요. '강한 것'보다 더 강력한 것은 '필사적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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