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 9:1~4 요단 강 서쪽의 야산과 평원지대와 지중해 연안에서 레바논에 이르는 곳에 사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이 이 소식을 듣고, 함께 모여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기로 뜻을 모았다. 히위 사람인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라는 사람이 여리고 성과 아이 성에서 한 일을 듣고서, 여호수아를 속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낡은 부대와 해어지고 터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서, 외모를 사절단처럼 꾸미고 길을 떠났다.
좋은 아침입니다. 혹시 아침에 일어날 때 무엇을 처음 하시나요? 저는 물론 일어나면 먼저 엎드려 기도를 합니다. 하루 주심을 감사하고 오늘도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기를 다짐하죠. 그리고 기지개를 켭니다. 밤새 굳었던 몸을 펴주는 작업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몸과 마음에 스트레칭을 하는 거죠. 밖이 춥습니다. 추울수록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잘 풀어주어야 하죠. 다른 것이 없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밝은 미소로, 소망과 희망으로 마음을 다잡고 문을 열면 추위 따위가 우리를 이기지 못할 줄 믿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많이 들어본 말이죠. 설교에도 많이 인용되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분이 이 말씀이 성경에 있는 말이라고 알고 계시던데 사실은 성경에 있는 말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이솝우화가 원조라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영국의 작가라고도 하는데요. 분명한 출처를 구분 짓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비슷한 내용의 격언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죠.
그렇다면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을까요? 많은 분들은 이 말을 개인적인 의지, 그러니까 하늘의 도움보다 자신의 의지를 더욱 강조한 말이라고 해석하죠. 그래서 그런지 기독교 일부에서는 이 말이 성경의 흐름과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보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히려 이 격언의 정반대의 입장으로, '하나님은 스스로 돕지 못하는 이들을 도우신다'는 말로 바꾸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은 값없는 은혜를 주시고 죄인까지도 사랑하시며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맞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가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낙심하고 좌절한 이들, 힘이 없어 쓰러진 이들을 도우신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님이 도우시는 방법은 쓰러진 자를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으키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고치시는 이적의 자리에는 늘 주님 앞에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 있었고, 옷자락을 만지는 행동 위에 기적이 임했음을 볼 수 있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의 진정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저 개인적으로는 하늘의 힘보다 자신을 믿으라는 의미보다는 하늘이 돕고자 하여도 스스로 자신을 돕지 못하면 하늘의 도움 또한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와 가장 유사한 성경은 바로 마태복음서 7:7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서 7:7,8 "구하여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시고, 찾기를 바라시며, 문을 열어 주실 것을 약속하시죠.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구하여야 얻을 수 있고, 찾아야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모르셔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지, 찾는지, 또 들어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모르셔서 우리의 간구를 듣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죠. 그분은 우리의 의식(意識), 우리의 의지를 바라시는 거죠. 부정적인 사람이 무엇을 얻은들 그것은 감사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의식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은 찾아도 만족을 못해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얻고 찾고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얻을 때 기뻐하고 찾을 때 감사하며 들어갈 때 은혜임을 아는 우리의 의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하나님은 중요하게 생각하시니까요. 그래서 우리의 의식, 그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바라보는 우리의 소망이 중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 늘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어차피 잘 되게 되어 있다.' 이게 우리 인생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이죠. 그게 나의 의식입니다.
어제 우리는 이미 기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눈 바 있죠. 그런데 다시금 그들의 이야기를 묵상하는 이유는 그들의 의식, 즉 그들이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금 묵상하기 위해서죠. 아시다시피 그들은 이스라엘 편에 서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가나안 사람입니다. 가나안의 여러 부족들이 이스라엘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죠. 게다가 기브온 족속은 가나안 족속들 가운데서 가장 용맹한 전사들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강성 족속이었다는 거죠. 우리들 입장에서 보면 가장 부정적이고 가장 뾰족한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을 해요. 가나안 족속인가? 이스라엘인가?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을 선택합니다. 그 이유는 이제 이미 다 아시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느낀 겁니다. 라합처럼 말이죠.
더욱이 그들은 가나안이라는 땅에 익숙한 족속입니다. 그 문화에서 자라고 그 사회에 익숙한 이들이죠. 하나님과 유일신 신앙 아래서 살아본 적도 없는 이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죠. 굴욕을 겪으면서까지 변장하고 속이고 종이 되겠다고 약속하면서까지 이스라엘에 섭니다.
제가 성경을 묵상할 때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메시지를 찾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이런 질문이에요. '이 본문이 왜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왜 내가 이 본문을 읽고 있나?'입니다. 왜 이 본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한낱 이름 없는 민족인 기브온 족속의 이야기를 여호수아서 한 장을 다 차지하면서까지 기록해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이 말씀이 저에게 필요한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저는 늘 익숙한 자리에서 생각하죠. 남자로, 목회자로, 중년의 나이로,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내가 배운 바대로 살아갑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해서도 저는 나의 익숙한 자리 안에서 생각하죠. 나의 성격, 나의 배경, 나의 처지를 떠나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사는 법이 없습니다. 어떤 생각도 내 익숙한 자리에서의 생각이죠. 그렇게 생각하니 참 한심하고 좁디좁은 나의 의식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어요.
'너의 익숙한 자리를 떠나 더 넓고 큰 하나님을 만나보지 않으련?'
아무리 익숙한 자리여도 희망이 없으면 버리세요. 아무리 내가 편한 자리여도 그곳이 늘 절망과 좌절이 엄습하는 어두운 곳이라면 단절하고 새로운 의식의 세계로 나아가세요. 늘 하던 대로 살지 마시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세요. 늘 먹던 것 먹지 말고 이제 건강한 것 드세요. 나이 믿고 마음대로 살던 방식을 버리세요.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닙니다. 건강하게 운동하고 새롭게 살아야 하죠. 이제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내가 웃으며 살 수 있는 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하죠.
시편 84:10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화려한 절망보다 소소한 희망을 꿈꾸는 우리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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