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어치 있는 것일수록 요란하지 않습니다.”(롬16:17~27)
친구 목사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사역하는 교회에 오토바이 매니아 집사님이 계시답니다. 오토바이를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결혼 후 아내의 반대로 그동안 타지 못하다가 어렵게 아내의 동의를 얻어 작은 오토바이 한 대를 구입하셨답니다. 어느 날 폼나게 오토바이를 몰고 대로를 나가 달리다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데 바로 옆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표의 대형 오토바이가 서더랍니다. 이 집사님이 속으로 경쟁심이 발동했습니다. 그 유명 상표의 오토바이를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입니다. “오토바이가 비싸면 다냐 그게 그거지” 하는 마음으로 한껏 경쟁심에 부풀었습니다. 그래서 몸도 낮추고, 아직 출발 전인데도 악세레이터를 걸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마침내 신호등이 바뀌고 그 집사님은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출발하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옆에 있던 유명 오토바이의 상황을 살펴보았는데, 그 오토바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뒤쳐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집사님은 이겼다는 뿌듯한 마음에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유명 오토바이는 ‘봉~’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순식간 집사님을 지나쳐 가더라는 것입니다. 한껏 힘을 주고, 굉음을 내며 내 달렸는데 별 소리도 내지 않고 앞질러가는 오토바이를 보았으니 매니아로서 상심이 크셨겠지요. 지나가는 이야기로는 그 집사님, 그 뒤로 집을 팔아 유명 대형 오토바이를 샀다나 어쨌다나 하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책을 보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에 빗대어, 두 종류의 신앙인으로 나눠서 설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정비형 신앙인이고, 또 하나는 수리형 신앙인이라 평하더군요. 정비형 신앙인은 평상시에 자동차를 잘 정비하듯 평상시에 기도와 말씀으로 훈련하고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반면 수리형 신앙인은 평상시에는 전혀 자동차 정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나면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가는 것처럼, 평상시에는 신앙의 훈련을 하지 않다가 문제가 닥치고, 어려움이 몰려오고, 사건이 벌어지면 그 때에서야 요란하게 신앙생활의 수리에 들어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부류의 나눔은 일리가 있습니다. 분명 그런 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정비형 신앙인에 비해 수리형 신앙인이 요란하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가령 정비를 잘 한 사람은 자동차가 어디가 어떻게 잘 못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비를 잘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정비를 하지 않다가 문제가 발생하여 수리를 하는 자동차는 뭔가 수리를 하고, 좋아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수리를 하면 완전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 문제가 없어야 정상이지만 고친 것이 뭔가 더 정확해 보이고, 나아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우리에게 많습니다. 정비형 신앙인에 비해 수리형 신앙인은 요란합니다. 뭔가 있어 보입니다.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정비형의 신앙인은 뭔가 없어 보입니다. 늘 똑같아 보입니다. 다이나믹해 보이지 않고, 밋밋해 보입니다. 그래서 정비형의 신앙인들이 간혹 자신의 신앙패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영적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릴 적 부흥회를 가면 목사님들의 간증을 듣게 됩니다. 목사님들 가운데는 왜 그리 전직 깡패가 많으신지, 죄다 깡패 짓 하다가 목사님 되어서 자신의 바뀐 삶을 이야기 하는데 뭔가 있어 보입니다. 저는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별 문제없이 살았습니다. 교회에 반대하는 도전도 없었고, 더더욱 깡패 짓 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 한 것이 정말 은혜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과거 깡패에서 돌아와 목사님 된 분이 부러웠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의 패턴은 뭔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값어치 있는 것일수록 요란하지 않는 법입니다. 전쟁은 요란하지만 평화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악함은 모든 인격을 시끄럽게 하지만 선함은 그저 고요할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센세이셔날한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이벤트로 채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특별한 날, 주일,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쩌면 너무 고요하고, 어쩌면 너무 평범한 것 같은 일상에서 만들어지고, 가꾸어 집니다.
이미 그리스도인에게는 수많은 문제와 수많은 공격들이 가로 막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많은 유혹과 말들이 우리를 요란하게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도, 어떤 모임에도 이런 어려움들은 당연히 찾아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며, 또 세상과 다른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공격과 유혹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연한 공격을 이길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공격에 미련해 지는 것입니다. 미련이라는 표현은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보일 반응은 선함입니다.
우리는 악한 세력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당연히 그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으로 다져진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 한 것은 평화를 얻기 위함이지 전쟁을 계속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평화이지 전쟁이 아닙니다. 때론 우리 신앙이 특별한 것만을 추구합니다. 특별한 은혜가 없으면, 특별한 눈물이 없고, 특별한 깨달음이 없으면 주님의 은혜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기도원에 찾아가고, 특별한 모임에 빠집니다. 중요한 사실은 선함은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선함은 일상입니다. 선함은 평화 속에 임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고요와 평안을 가장 큰 축복으로 여기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때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멉니다. 우리의 신앙적 호흡이 고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평범함 속에서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꿈꾸고 기대하십시오. 문제에 민감하기보다 은혜에 민감하십시오. 대적자에게 민감하기 보다 사랑의 하나님께 민감하십시오. 에녹처럼 평범한 동행을 꿈꾸십시오. 그것이 어떤 공격에도 평안을 잃지 않는 가장 큰 영적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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