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은 우리가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 힘도 쓰지 못하는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롬13:1~7)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이라는 사기수법이 2006년 첫 피해사례가 보고된 이후 5년 동안 피해금액은 자그만치 10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아이나 가족이 다쳤다는 거짓으로 병원비를 보내라는 사기수법에서 이제는 은행 ATM기를 이용하는 수법에 이르기까지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되어 주의를 요하게 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런 사기수법의 정보가 알려지지 않아 많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쯤 지났으면 그런 거짓 정보나 속임수에 당하지 않을 만도 한데 보이스피싱의 피해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피해가 줄지 않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도, 혹은 무식해서도 아니다. 보이스피싱의 수법이 우리의 머리가 따라가지 못할 만큼 최첨단의 기술이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두려움’이다.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 자극되고 꿈틀거리면 그것은 어떤 이성이나 경험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괴물이 된다. 이 두려움은 그래서 사단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다스리시지만 사단은 기본적으로 두려움을 이용하여 우리를 지배한다. 두려움은, 발동하면 그만큼 온 영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을 가진 무서운 존재가 된다. 모든 세상의 다스림에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두려움을 자극하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 길거리 약장수의 약도 사게 되고, 망하거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지면 고사상의 돼지 머리에 봉투를 물려주거나 무당의 주머니에 복채를 끼워 넣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바다에 산 제물을 던져 넣는 일도 한다. 두려움 앞에서는 이성도, 지성도 마비되어 버린다.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양 같은 순한 이가 우는 사자처럼 폭력적으로 변하고, 패배에 대한 두려움에 정의와 공의는 헌신짝 취급을 당한다.
시편23편에서 시편 기자는 골짜기를 지나는 양들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양을 이끄는 목자들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양들의 처소로 가는 길에 골짜기를 만나기도 한다. 골짜기는 다소 음침하고 스산하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골짜기 위 산등성에서 둥근 달빛을 배경으로 검은 빛의 늑대가 목 놓아 우짖는 장면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그 소리에 양들은 동요하고 무리를 이탈하려는 낌새도 감지된다. 이 때 목자는 부드러운 휘파람 소리와 자신의 지팡이로 양들을 다독인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정작 늑대의 울음소리가 아무리 우렁차도 양들이 그 무리를 이탈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는 것이다. 늑대의 울음소리가 노리는 것은 양들의 이탈이다. 다시 말해서 늑대는 양들을 두렵게 하여 무리를 이탈하게 하고, 그 이탈한 양을 목표로 삼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늑대의 울음소리는 실제 하는 위협이 아니다. 단지 두려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다. 정작 울음소리는 아무런 해를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 울음소리가 우리 안의 두려움을 자극하고 그 두려움으로 인해 결국 우리는 해를 입는다. 실제로 두려움에 사로잡힌 양은 목자의 막대기나 지팡이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목적 잃은 양처럼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실제 하는 힘에서가 아니라 실제 하지 않는 두려움이 일을 내 버린다.
두려움은 실제 하는 힘이 아니다. 두려움은 그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하다. 우리가 반응하지 않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가 쳐다보지 않으면 흔적도 알 수 없는 신기루일 뿐이다. 어떤 이는 신앙생활 하면서 늘 두려움에 쌓여 있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내가 맞는지 뭐가 그리 염려가 되는지 항상 잘못될까봐 두려워한다. 혹시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실까? 혹시나 벌 받지는 않을까? 이런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못한 신앙인들이 너무 많다. 바울은 우리에게 오늘 말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내가 맞는지 틀린지 염려하기 이전에 그 힘으로 늘 선한 길을 찾아 최선을 다하라고 말이다. 두려움은 선한 길을 가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주님의 길을 가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두려움은 그저 실체가 없는 신기루다. 우리의 행동, 우리의 신앙은 두려움이 원동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진리가 나의 행동과 판단과 결정, 나의 신앙생활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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