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가로 축복의 기준을 삼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가로 축복의 분량을 정하신다."
요즈음 국민 사위, 국민 남편으로 각광받는 드라마 주인공이 있다. 너무도 예의바르고,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러운 주인공이다. 그러나 풍족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을 것 같은 이 주인공은 사실 그런 환경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자라났다. 어릴 적 길거리에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서 고아원에서 자랐고, 또 미국 입양까지 되어 자랐던 과거가 그의 인생에 묻어 있다. 옛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많았다. 통신시설도, 행정 체계도 기민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그 드라마 주인공이 어떤 세월을 살았을지, 어떤 심정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살았을지 본인이 아닌 바에 우리는 짐작조차도 사치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형제 중에 어렵게 자란 이가 있다. 선대로부터 대물림된 경제적 빚 때문에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도 제대로 설계해 보지 못하고 어린 나이부터 공사판에서 일을 시작해야 했던 가정이다.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이었지만 무학자였던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몇 번의 사기를 당하셨고, 늘 피해자가 되셨다. 명백한 죄과의 구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적 서비스는 아버지를 빗겨갔으며, 그렇게 또 가난은 쌓여갔다. 급기야 착하디착하신 아버지는 화병에 거동도 못하실 정도로 몸져누우시고, 어머니가 이 일 저 일 허드렛일로 가계를 꾸려나가셨다. 이 형제는 어릴 적부터 일반적인 가정교육은 물론이고 어느 곳에서도 교육적 도움을 받아본 일이 없다. 6개월에 한 번씩 이사 가기 바빴고, 버스비 때문에 매일 수 십 km를 걷는 것은 예사였다.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에서도 많은 구박을 받았고, 하고 싶은 취미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단칸방에 온 식구가 살아야 하기에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만 그는 그래도 꾸준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나는 이 친구에게 장래의 꿈이 뭔지 물어보았다. 법률가가 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법률가가 되어서 아버지처럼 법률적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려구요”
얼마 전 돌아가신 강영우박사의 첫째 아들인 강진석씨는 전 미국 안과학회 최고 의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유명한 안과의사다. 그가 안과의사로 꿈을 키우고 명성을 얻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그의 아버지 강영우박사가 시각 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을 아들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차치하고라도,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나의 히어로가 아니라 내가 도와주어야 할 대상일 때의 그 심정을 이해하는가?
아픔을 겪어본 사람의 반응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도망치는 것이다. 그 아픔의 기억을 송두리째 잊고 싶어 한다. 어려움의 가정에서 자라면 그 가정을 떠나고 싶어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안고 살았다면 돈에 이를 갈며 복수하듯 돈에 눈이 멀어버린다. 반면, 다른 하나는 그 아픔을 자신의 미래로 만드는 것이다. 아픔을 당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키우고, 자신의 사명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위 드라마의 주인공이 얼마나 좋은 양부모를 만났는지, 미국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가 자신이 부모를 잃었고, 혹은 버림 받았다는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면 그는 아마도 국민 사위가 아니라 국민 밉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성품은 자신의 아픔을 꿈꾸는 미래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형제 또한 불행한 과거를 미래에 대한 꿈으로 만들지 못했다면 그는 돈에 눈멀어 “성공! 성공! 성공!”을 외치며, ‘경제’라는 괴물이 쏟아내는 각종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리는 속물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내 인생이 좋건 나쁘건, 내 인생이 많건 적건 그 속에 약속의 비밀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세상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났는가에 축복의 기준을 정한다. 어떤 가문에서 태어나고, 얼마만큼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는가에 그가 받은 축복을 논한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난 존재는 그가 얼마를 가졌던, 얼마나 지녔던 모두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는 자들이다. 다만 이 땅에서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약속을 믿는가이다. 축복은, 얼마나 받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는가에 달려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은 이미 받은 것보다 이제 받을 것이 훨씬 많다. 나의 현재 자리가 나의 자리가 아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자리가 바로 나의 자리다. 현재의 나의 자리로 미래를 비춘다면 우리는 약속을 바라지 못한다.
'묵상하는말씀 > 로마서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묵상32] 우리의 믿음은 다른 이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롬11:25~36) (0) | 2012.06.28 |
---|---|
로마서묵상31]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자네는 그저 물을 주게나."(롬11:1~10) (0) | 2012.06.26 |
로마서묵상30] 잘 듣고, 들은 대로 행해야 순종이다.(롬10:13~21) (0) | 2012.06.26 |
로마서묵상29] "나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는 방향이다."(롬10:1~12) (0) | 2012.06.23 |
로마서묵상28] 하나님은 그분 마음대로 하시면 안 됩니까?(롬9:14~23) (0) | 2012.06.21 |
로마서묵상26] 고통이 없는 역사는 없고, 눈물이 없는 기적은 없으며, 슬픔을 머금지 않은 은혜는 없다.(롬9:1~5) (0) | 2012.06.19 |
로마서묵상25] "우리의 영혼은 놀라운 변혁의 자리이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강력한 혁신의 현장이다."(롬8:33~39) (0) | 2012.06.19 |
로마서묵상24]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협력을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선을 이룬다."(롬8:28~32) (0) | 2012.06.16 |
로마서묵상23]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롬8:19~27) (0) | 2012.06.16 |
로마서묵상22] “나는 더 이상 찌질 하지 않다”(롬8:14~18) (0) | 2012.06.14 |